전래동화, 헤이즐넛 그리고 개암나무 열매
지난주 북한산 우이령길에서 한창 여물고 있는 개암나무 열매(아래 사진)를 보았습니다. 개암나무 열매는 전래동화에도 나오고 헤이즐넛 커피 향 원료로 쓰이는 등 재미있는 얘깃거리가 많은 열매입니다. ^^
개암나무는 양지바른 숲가장자리에서 자라는 나무로, 키는 2m 이내인 관목입니다. 이 개암나무 열매를 ‘개암’이라고 합니다. 아래 사진처럼 개암나무 열매는 열매를 감싸는 포가 짧아서 열매가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전래동화 가운데 ‘개암 깨무는 소리에 도깨비가 도망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에 나무꾼이 날이 저물어 빈 집에 들어갔는데, 하필 도깨비들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도깨비들이 돌아오자 나무꾼은 천장으로 몸을 피해 숨어 있는데 배가 너무 고팠답니다. 그래서 산에서 주머니에 넣어 둔 개암을 꺼내 깨물자, 깨무는 소리가 너무 커서 도깨비들이 천장이 무너지는줄 알고 도깨비방망이까지 놔두고 도망갔다고 합니다. ^^
개암나무의 열매, 즉 개암은 영어로 헤이즐넛 (Hazelnut)입니다. 커피 원두에 개암 향을 넣어 가공한 것을 헤이즐넛 커피라고 부릅니다. ^^ 개암은 ‘개밤’에서 변한 것이라고 합니다. 보통 '개'라는 접두어가 붙으면 '질이 낮다'라는 뜻이 있는데 '밤보다 질이 떨어지는 열매'라는 의미라 할 수 있겠습니다.
개암나무는 잎도 독특하게 생겼습니다. 딸이 어렸을 때 이 나무 잎을 보더니 “누군가 잎을 뜯어낸 것 같아요”라고 말해 가족들이 웃은 적이 있습니다. 개암나무 잎을 볼 때마다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
지금처럼 나무가 우거지지 않은 시절에는 개암나무 같은 관목이 많이 자랐고 개암은 가을에 아이들의 긴요한 간식거리였다고 합니다. 개암이 전래동화에 등장할 만큼 그만큼 흔했고 우리 삶과 밀접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개암나무는 한 나무에서 수꽃과 암꽃이 따로 핍니다. 봄이 시작하는 3월에 꼬리모양의 긴 수꽃이 잎보다 먼저 가지에 주렁주렁 달리고, 암꽃은 수꽃이 맺힌 가지 아래쪽에 진분홍 말미잘 모양으로 달립니다. 해마다 봄이면 이 둘이 함께 나오게 담으려고 애를 쓴 기억이 납니다. ^^
중부지방 산에서 가끔 개암나무 열매 비슷한데 열매를 감싸는 포가 남아서 길쭉하게 뻗어 나온 종류를 볼 수 있습니다. 물개암나무입니다. 물개암나무는 잎의 톱니가 불규칙한 겹톱니가 있고 잎의 밑부분이 심장형입니다.
주로 남부지방에서 자라는 참개암나무도 있다는데, 아무리 들여다봐도 물개암나무와 차이를 명확하게 찾기 어려워 소개하지 않겠습니다(참개암나무는 ①잎 밑이 심장형이 아니라 그냥 둥글고 ②열매를 감싸는 포가 급격하게 좁아져 가늘고 간 점이 다르다는데...). 학계에도 이 둘을 같은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고 합니다. ^^
◇개암나무 관련해 더 읽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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