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킥보드 타는 할머니, 딸과 달맞이꽃 추억을 떠올리다

우면산 2024. 7. 24.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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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희 단편소설어느 밤2019년 김승옥문학상 수상작이다. 한밤중에 킥보드를 타다 사고를 당해 홀로 쓰러져 있는 노년 여성이 자서전을 써내려가듯 일생을 회고하는 내용이다.

 

내년 칠순을 앞둔 이 여성은 아파트 놀이터에서 킥보드를 훔쳤다. 밤마다 이웃 아파트 단지에서 킥보드를 타다 넘어져 꼼짝 할 수가 없다. 사람을 불러보지만 으슥한 곳이라 응답이 없다. 구조를 기다리며 찬찬히 옛 기억을 되짚는다.

 

결혼 초기는 남편과 지물포를 차렸다. 도배지를 바닥에 깔고 앉아 고추장에 밥을 비벼 먹었지만 입이 달던 시절이었다. 인테리어 업자에게 밀려 가게를 접은 후 남편은 공사 현장 경비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순찰을 제대로 돌지 않은 어느 날 사고가 나서 해고를 당했다. 이후 남편이 하루종일 뉴스를 보며 미친놈, 미친년이라고 욕하는 것이 싫어 는 밤마다 킥보드를 타고 있다.

 

달맞이꽃.

 

부부는 어려운 살림이었지만 딸을 미국에 유학을 보냈고 딸은 그곳에 정착했다. 사람들은 집을 팔아서 유학을 보냈다고 비웃었지만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내년 칠순 때 딸이 올지 안올지 모르겠다. 딸과 추억을 떠올릴 때 달맞이꽃이 나오고 있다.

 

달맞이꽃.

 

<달을 보니 달맞이꽃이 생각났다. 시아버지의 병문안을 갔다가 막차가 끊겨서 딸을 업고 집으로 돌아오던 날, 달맞이꽃이 참 환했다. 곧 시아버지가 돌아가실 거라는 사실도 잊을 정도로. 소꿉놀이를 좋아하던 딸은 달맞이꽃을 따다가 꽃밥을 짓곤 했다. 딸과 함께 달맞이꽃을 튀긴 적도 있었다. 여름방학 숙제였다. 엄마랑 요리하기. 아카시아꽃도 튀겼다. 중학생 때 딸은 아픈 엄마에게 꽃을 튀겨 생일상을 차려주는 아이의 이야기를 써서 글짓기 상을 받았다. 그때부터 똑똑했다.>

 

달맞이꽃.

 

윤성희 소설은 휙휙 이야기 소재가 변하는데 이 달맞이꽃 이야기는 비교적 자세히 나오고 있다. 바닥에 넘어진를 발견한 것은 독서실에서 밤을 세고 귀가하던 청년이었다. 청년은 점퍼를 벗어 를 덮어주고 구급대원을 부른다. 비로소 마음을 연 는 청년에게 킥보드를 다시 놀이터로 갖다 놓아 달라고 부탁한다. 더 이상 그녀에게 킥보드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에게 같은 아파트에 살며 다음에 만나면 맥주에 치킨까지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다.

 

노년 여성이 쓰러져 있다가 떠올린 달맞이꽃이 요즘 한창이다. 바늘꽃과 두해살이풀로, 여름에 4장의 꽃잎으로 이루어진 밝은 노란색 꽃이 잎겨드랑이마다 한 개씩 달린다. 이름 그대로 달을 뜨는 저녁에 꽃이 피었다가 아침에 시든다. 저녁에 꽃이 피는 이유는 주로 밤에 활동하는 박각시나 나방 등 야행성 곤충이 꽃가루받이를 도와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꽃잎이 축 쳐진 모습을 보지만 밤 8시 정도부터는 언제 그랬냐는듯 싱싱한 꽃이 활짝 피어 있는 반전을 볼 수 있다.

 

달맞이꽃.

 

겨울에 공터 등에 가보면 땅바닥에 잎을 방석 모양으로 둥글게 펴고 바싹 엎드려 있는 식물들을 볼 수 있다. 냉이·민들레·애기똥풀·뽀리뱅이 등이 대표적으로, 그 모양이 마치 장미 꽃송이 같다고 로제트(rosette)형이라 부른다. 그 중 잎의 가장자리가 붉게 물들어 푸르지도 붉지도 않은 색으로 자라는 식물이 달맞이꽃이다. 이런 형태로 겨울을 견디다 봄이 오자마자 재빨리 새순이 나와 쑥쑥 자라는 식물이다.

 

달맞이꽃은 어릴 적부터 보아온 아주 친근한 식물이지만 고향이 우리나라가 아니라 남미인 귀화식물이다. 하지만 일찍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자리잡고 씨앗을 퍼트려 이제 전국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다. 아주 우거진 숲에는 들어가 살지 못하고 사람들이 파헤쳐 공터를 만들어 놓았거나 길을 만든 가장자리 또는 경사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길쭉한 주머니같은 열매 속에 까만 씨앗이 들어 있는데, 한때 이 씨앗으로 짠 기름이 성인병에 좋다고 유행을 탄 적이 있다.

 

 

◇더 읽을거리

 

-정말 '툭' 달맞이꽃 피는 소리가 날까? 

 

-낮달맞이꽃, 분홍낮달맞이꽃 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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