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희 소설집 ‘날마다 만우절’에 ‘블랙홀’이라는 단편이 있습니다. 이 소설에 재미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쌍둥이 자매가 고속도로 옆에 핀 하얀꽃 군락이 이팝나무꽃인지 조팝나무꽃인지 티격태격하다 내기를 하는 장면입니다. ^^
<고속도로 옆으로 하얀 꽃들이 군락을 이루며 피어있었다. 나는 자동차 창문을 내렸다. 향긋한 냄새가 날 줄 알았는데 아무 냄새도 느껴지지 않았다. 언니는 그 꽃이 이팝나무 꽃이라고 했다. 나는 조팝나무 꽃이라고 했다.
"내기할까?" "응, 내기하자." 우리는 무엇을 걸지 한참을 생각했다. (중략)
나는 휴대폰을 꺼내 이팝나무와 조팝나무를 검색해봤다. 세상에. 이팝나무는 물푸레나무과고 조팝나무는 장미과였다.
"이름만 봐서는 쌍둥이 같은데 말이야." 내 말에 언니가 쌍둥이들도 얼마나 성격이 다른데, 하고 받아쳤다.
"그건 그렇고 그래서 저 꽃은 뭐야?" 언니가 물었다. "잘 모르겠어. 너무 멀어서 그런가. 똑같아 보여." 우리는 확실해질 때까지 당분간 고속도로 옆에 핀 흰 꽃을 이조팝나무 꽃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팝나무와 조팝나무는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이름이 비슷한데다 둘다 흰색 꽃이 피어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하는 꽃입니다. 더구나 둘다 꽃이 예뻐서 산과 들에는 물론 도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꽃입니다. ^^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팝나무는 키가 큰 교목이고, 조팝나무는 키가 작은 관목이라는 것입니다. ^^ 교목은 보통 5~6미터 이상의 나무를, 관목은 2미터 이내의 나무를 가리킵니다. 이팝나무는 도심 가로수로, 조팝나무는 산울타리 또는 화단용으로 많이 심는 나무입니다.
이팝나무는 서울 가로수의 6.5%를 차지하는 나무입니다. 은행나무, 플라타너스, 느티나무, 왕벚나무에 이어 5번째로 많은 나무입니다. 부산의 경우 왕벚나무, 은행나무, 느티나무에 이어 4번째로 많은 나무입니다. ^^ 요즘 서울 시내를 보면 이팝나무가 하얀 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조팝나무는 이른봄 공원이나 화단에서 새하얗게 피는 꽃입니다. 요즘은 거의 졌죠. 서울 청계천 등 공원이나 화단에서 새하얀 가지들이 너울거리면 조팝나무 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조팝나무는 산울타리로 많이 심는 나무이기도 합니다. ^^
그럼 윤성희 단편 ‘블랙홀’에 나오는 하얀 꽃 군락은 어떤 나무일까요? 저는 조팝나무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고속도로를 가다보면 조팝나무 군락이 피어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조팝나무는 우리나라 전역의 산과 들에서 흔히 자라는 나무입니다. 다만 낮은 확률이지만, 이팝나무를 무리로 심어놓은 걸 보았을 수도 있으니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겠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면 이팝나무 꽃은 꼭 이밥(쌀밥)을 얹어 놓은 모양입니다. 이팝나무라는 이름도 거기서 나온 것입니다. 조팝나무라는 이름은 하얀 꽃잎에 노란 꽃술이 박힌 것이 좁쌀로 지은 조밥 같다고 붙였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옛사람들은 이팝나무꽃에서나 조팝나무꽃에서나 밥을 연상한 모양입니다. ^^
◇더 읽을거리
-쌀밥 같은 하얀 꽃 피는 가로수 이팝나무 개화, 서울에서 감상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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