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지구 끝의 온실’ 속 덩굴, 가시박·칡 연상시켜요 ^^

우면산 2023. 12. 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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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SF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을 막 읽었습니다. 그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가슴 뭉클하게 읽은 기억이 있어서 이번에도 기대를 갖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

 

이 소설은 배경이 2050~60년대인데, 인류의 멸망과 재건 과정에서 모스바나라고 부르는 식물이 중요 역할을 하더군요. ‘푸른 빛이 나는 덩굴이 폐허도시 해월에서 이상증식하자 생태학자 아영이 그 현상을 파헤쳐 나가는 내용입니다.

 

디스토피아 시대 인류는 더스트(바이러스같은 먼지) 때문에 절반 이상 죽고 일부만 돔시티에 살거나 공동체를 형성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식물학자 레이첼은 야생 식물들을 조합해 더스트를 응고시키는 식물을 만듭니다. 이 식물이 모스바나입니다. 아영이 더스트와 모스바나를 추적하면서 더스트 시대가 왜 왔고 어떻게 물러갔는지 알아가는 줄거리입니다. ^^  이 과정에서 ‘랑가노의 마녀들’, 프림 빌리지 등이 나옵니다. 

 

, 그럼 모스바나는 어떤 식물일까요? 책엔 세발잔털갈고리라는 이름과 ‘Hedera trifidus’라는 학명까지 나오지만 가상의 식물입니다. ^^ Hedera는 송악속()으로, 여기엔 송악, 아이비 등이 속해 있습니다.

 

송악.

 

아이비(Ivy)라는 이름은 익숙하죠? 화분의 빈 공간을 채우는 용도로 많이 쓰는 식물입니다. 송악은 두릅나무과에 속하는 상록성 덩굴나무로, 우리나라에서 자라는한국의 아이비입니다. ^^

 

송악은 주로 남해안과 제주도 등 남쪽 지방에 분포하지만 해안가를 따라 인천까지 올라오는데, 요즘은 서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인왕산 기슭에 있는 청운공원에 가면 송악이 담장을 뒤덮으며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하지만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맹렬하게 퍼지는 식물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스바나가 맹렬하게 퍼지는 점에서 가시박과 칡을 연상시킵니다. 가시박은 북미 원산인 일년생 덩굴식물인데, 1980년대 후반 가시박 줄기에 오이나 호박의 줄기를 붙이기 위해 도입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전국 하천이나 호수 주변으로 급속도로 퍼져 주변 토종 식물들을 덮어 말려 죽이고 있습니다.

 

다른 식물을 덮으며 자란 가시박.

 

환경부가 지정한 생태계 교란 식물 중에서도 가장 큰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ㅠㅠ 퇴치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이미 광범위하게 퍼졌고, 전적으로 인력에 의존하기 때문에 부분적인 제거에 그치고 있는 실정입니다. 가시박이란 이름은 열매에 뾰족한 가시가 달려 있어서 얻은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가시박이 모스바나와 가장 비슷한 인상을 줍니다. ^^

 

다른 식물을 덮고 있는 칡덩굴.

 

칡은 다른 나무나 물체를 감고 올라가며 자라는 식물입니다. 순식간에 주변 숲을 덮어버릴 만큼 세력이 좋아 산을 깎은 자리에 산사태를 막기 위해 일부러 심기도 합니다. 칡이 도로변 등 경사면을 온통 뒤덮고 있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요즘에는 칡이 너무 번성해 다른 식물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도로까지 줄기를 뻗어 덮으려고 하는 칡 줄기를 보면 대책을 세워야 할 단계에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옛날엔 사람들이 칡뿌리를 캐서 균형을 이루었는데, 요즘은 그런 사람이 드물어서인지 너무 번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생식물만 아니었으면 벌써 생태계 교란식물로 지정됐을 거라는 게 학자들의 얘기입니다. ^^

 

이 소설은 식물이 주인공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모스바나가 자주 나오고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작가는 원예학 전공인 아버지 도움을 톡톡히 받았다고 합니다. 작가 이름이 '풀 초()' '나뭇잎 엽()' '초엽'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합니다. ^^ 작가가 더 재미있는 식물 소설을 써주기를 기대하겠습니다.

 

 

◇더 읽을거리

 

-릴리·데이지, 김초엽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꽃들 

 

-개망초·종지나물·소래풀·큰금계국, 원예종에서 야생으로 탈출한 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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