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혼불’, 비노리 같이 하찮은 사람들 이야기

우면산 2023. 7. 6. 06:55
반응형

 

최명희 대하소설 혼불은 작가가 17년에 걸쳐 10권으로 완성한 대하소설입니다. 일제강점기인 1936~1943년 무너져가는 종가(宗家)를 지키는 종부 3(청암부인-율촌댁-허효원)의 갈등관계, 이 종가의 땅을 부치며 살아가는 상민마을 '거멍굴' 사람들의 삶을 그린 소설입니다. ^^

 

혼불에는 여뀌라는 식물이 자주 등장합니다. ‘강실이에게는 그 목소리조차 아득하게 들렸다. 그러면서 등을 찌르던 명아주 여뀌 꽃대 부러지는 소리가 아우성처럼 귀에 찔려왔다와 같은 식입니다. 여뀌 꽃대 부러지는 소리가 반복적으로 나오는거죠. ^^

 

여뀌 중에서 가장 흔한 개여뀌.

 

사촌 관계인 강실이와 강모의 애증관계는 이 소설의 기본 뼈대 중 하나인데, 강모가 연모하던 강실이를 범하는 장소가 하필 명아주 여뀌가 무성한 텃밭이어서 강실이가 이 장면을 회상할 때마다여뀌 꽃대 부러지는 소리가 반복적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ㅎ

 

그런데 혼불에 또하나 많이 나오는 풀이 있습니다. 바로 비노리입니다.

<청암부인이 온 마을의 어른으로서, 비노리풀같이 하찮은 타성바지 아낙에게 그 할아비의 제삿날을 일깨워 준 일은, 반상을 가리지 않고, 듣는 사람에게 송연한 충격을 안겨 주었던 것이다>와 같은 식입니다.

<가문 여름의 들판에서 하찮은 비노리풀, 갈퀴덩굴까지도 아우성치며, 꽃대가 부러진다> 같은 문장도 있습니다.

 

비노리가 나올 때 '하찮은'이라는 단어가 함께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비노리가 어떤 풀이기에 '혼불'에서 이런 식으로 묘사를 했을까요?

 

비노리는 벼과에 속한 한해살이풀인데, 마당, 빈터, 보도블록 사이 등에서 자라는 흔한 잡초 중 하나입니다. 줄기가 모여 나고 높이가 7~30센티미터 정도인 풀인데, 잎이 가늘고 길며 여름과 가을에 줄기 끝에 작은 이삭이 나와서 꽃도 달립니다. ^^ 아래 사진을 보면 흔히 본 풀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 

 

보도블록 사이에서 자라는 비노리.

 

비노리는 전체적인 형태가 그령 또는 잔디 비슷한 느낌을 주지만 그령보다는 훨씬 작고, 잔디보다는 더 부드러운 인상을 주는 풀입니다. 한없이 부드러워서 거친 빗자루로 쓸어도 아무런 상처도 없이 똑 같은 모습을 보이는 풀이기도 합니다. ^^

 

비노리. ⓒ국립수목원

 

요즘 보도블록 등 바닥을 보면 어디나 비노리가 한창입니다. 지난 주말 찾은 인천수목원 입구 광장에도 바닥 틈마다 비노리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저는 비노리를 보면 소설 혼불이 떠오릅니다. 그러면서 혼불을 대표하는 식물이 여뀌보다는 비노리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

 

 

◇더 읽을거리

 

-그나마 특징 뚜렷하고 흔한 여뀌 7가지, 여뀌 개여뀌 장대 이삭 가시 

 

-익모초 보면 더 그리워지는 어머니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