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간 고향마을 탱자나무 생울타리에 노랗게 익은 탱자가 가득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잘 익은 노란 탱자를 담고 싶었는데 기대한 딱 그 모습이었다. ^^
탱자나무는 서울에서는 보기가 쉽지 않은 나무라 어쩌다 만나면 고향 친구를 만난 듯 반갑다. 어릴 적 고향 마을에선 과수원이나 집 울타리로 흔히 쓴 나무였다. 요즘은 벽돌 담장에 밀려 시골에서도 보기 힘든 나무다. 윗동네 큰집 탱자나무 생울타리도 어느 해인가 벽돌 담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5월 하얀 탱자꽃이 필 때 옆을 지나면 꽃향기가 은은해서 참 좋다. 꽃은 꽃받침조각과 꽃잎이 각 5개이고, 잎은 작은 잎 3개가 모여 달리는 3출엽이다. 그러나 탱자나무는 꽃이 필 때보다 탁구공만 한 노란 열매가 달려 있을 때가 더 돋보인다.
어릴 적 가시에 찔려가며 노란 탱자를 따서 갖고 놀거나 간간이 맛본 기억이 있다. 잘 익은 노란 탱자도 상당히 시지만 약간 달짝지근한 맛도 있다. 탱자를 따기 위해 아무리 조심스럽게 손을 집어넣어도 여지없이 가시에 찔렸다.
탱자나무는 중국이 원산지로 추운 곳에서 자라지 못해 우리나라에서 주로 경기도 이남에서 자란다. 강화도가 북방한계선인데, 강화도 갑곶리와 사기리에 400년 전 병자호란 때 청나라 침입을 막기 위해 성벽을 쌓고 그 아래 심은 탱자나무 중 두 그루가 살아남아 있다. 각각 천연기념물 78·79호다. 그런데 기후변화로 서울에서도 탱자나무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경복궁 고궁박물관 옆 정원에 있는 탱자나무를 보면 열매가 온전하게 익지 못하고 조기에 쭈굴쭈굴 해지는 것 같았다.
노랗게 익은 탱자는 독특하고 강한 향기가 오래 가 자동차 같은 곳에 놓아두면 방향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또 나무가 단단해 명절이나 상갓집에서 윷놀이할 때 흔히 탱자나무를 잘라 윷을 만들었다. 고욤나무가 감나무 대목으로 쓰듯이, 탱자나무는 귤나무의 대목(臺木)으로 많이 쓰는 나무이기도 하다. 탱자나무 근처에서는 호랑나비를 흔히 볼 수 있는 재미도 있었다. 호랑나비가 탱자나무 잎에 알을 낳고 애벌레는 그 잎을 갉아먹고 살기 때문이다.
탱자나무가 가장 비극적으로 쓰인 것이 위리안치(圍籬安置)였다. 조선시대 왕족이나 고위 관료가 큰 죄를 지었을 때 먼 곳에 유배 보내면서 집 둘레를 탱자나무로 울타리를 만들어 외부와 접촉을 차단한 형벌이 위리안치형이었다. 대표적으로 폐주 연산군과 광해군이 위리안치 형벌을 받았다. 탱자나무는 여러 모로 얘깃거리가 많은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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