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늦게 퇴근해서 지친 발걸음으로 서울 경의선숲길을 산책하다 노루오줌이 피기 시작한 것을 보았다. 순간 피로를 잊을 정도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
무슨 꽃 이름에 오줌이 들어가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꽃 자체는 연분홍 꽃대에 솜처럼 피어 있는 것이 눈길을 확 잡을 정도로 아름답다. 뿌리에서 노루오줌 냄새가 난다고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독특한 이름 덕분에 한번 들으면 잊기 어려운 꽃이니 그 나름대로 장점이 있지 않나? 옛날에는 노루가 살 만큼 깊은 산골에 피었는데 심어 놓으면 특별히 관리하지 않아도 잘 자라 요즘은 화단 등에도 많이 심는다. 6월부터 피기 시작해 8월까지 볼 수 있다.
이렇게 재미있는 이름은 누가 붙였을까. 양반들은 굳이 산과 들을 다닐 일이 드물었을테니, 야생의 식물들은 산에서 나무하는 남정네, 밭에서 풀을 뽑는 아낙네 들이 붙였을 가능성이 높다.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는 ‘우리나무이름사전’ 머리말에서 “층층나무, 뽕나무 같은 순우리말 이름의 대부분은 살면서 숲과 나무를 가까이 할 수밖에 없는 백성들이 붙였다. 나무의 생김새나 특징을 뜻으로 나타내기보단 직관적인 느낌을 꾸밈없이 그대로 나타낸 이름이 많다”고 했다. 반면 “산수유, 주목 같은 한자어 이름은 글을 아는 선비들이 붙였다”고 했다.
노루오줌이라고 처음 부른 사람은 노루도 잘 알고 식물 특징도 잘 파악했기 때문에 이름을 붙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정도로 멋진 이름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명명(命名) 천재’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 이처럼 우리 식물 이름은 오감을 총동원해 지었고, 해학이 넘치고 정겨운 이름이 많다. 다른 분야보다 우리 고유어가 풍부하게 남아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우리 식물 이름에 노루가 들어간 경우는 꽤 있다. 대표적인 초봄 야생화 노루귀가 대표적이다. 이 귀여운 이름은 꽃이 핀 다음 깔때기처럼 말려서 나오는 잎 모양이 노루의 귀 같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역시 식물을 잘 관찰하지 않았으면 붙이기 어려운 이름이다.
우리나라 숲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루발풀은 잎 모양이 노루의 발자국 흔적과 비슷하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노루삼은 노루가 좋아하는 삼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오대산 숲에서 처음 귀엽고도 독특한 노루삼 꽃대를 보았을 때 숨이 멎을 듯한 감동을 잊을 수 없다.
오줌이 들어간 식물 이름도 계뇨등, 쥐오줌풀, 말오줌때, 말오줌나무 등으로 적지 않다. 계뇨등은 남쪽 지방에서, 쥐오줌풀은 야산에서 흔히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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