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공터 등에서 미국자리공 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어릴적에도 동네 지저분한 언덕이나 쓰레기를 버리는 곳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식물이었습니다. 조금 있으면 작은 포도송이처럼 검붉은 열매를 주렁주렁 달 겁니다. ^^
김형경의 장편 ‘꽃피는 고래’에는 이 미국자리공이 환경오염의 상징처럼 나오고 있습니다. 소설 주인공은 어느날 갑자기 부모를 잃고 방황하는 여고생 니은이입니다. 그래서 슬픔을 딛고 어른으로 커가는 성장소설적인 측면이 강합니다. 심리 치유 에세이집을 여러 권 낸 김형경이 쓴 소설이라 심리 묘사가 치밀하더군요.
이 소설은 공해문제를 다룬 환경소설이기도 합니다. 소설에 나오는 처용포의 실제 배경지는 울산에 있는 장생포입니다. 울산 장생포는 80년대 초까지 포항 구룡포와 함께 동해안의 주요 포경기지였습니다. 그런 처용포 주변에 정유공장 등 큰 공장들이 들어서자 숲은 황폐해지면서 미국자리공 같은 귀화식물이 자리잡습니다.
이에 장포수 할아버지는 필사적으로 사철나무 등 공해에 강한 나무를 심어 대응합니다. 작가는 정상적인 자연상태와 환경오염을 각각 사철나무와 미국자리공으로 상징화했습니다.
<아빠는 미국자리공과 사철나무숲이 경계를 이루는 곳으로도 나를 데려갔다. 미국자리공은 유조선과 함께 미국에서 건너온 식물이라고 했다. 봄에 갓 피어날 때부터 줄기가 붉은색이어서 멀리서 보면 산 전체에 붉은 물감을 엎질러놓은 듯했다. 가을에 맺히는 검은 열매를 터트리면 선혈처럼 붉은 과즙이 흘렀고 초겨울까지 두면 고약처럼 검고 끈적끈적한 덩어리가 되었다. 미국자리공은 처용포 뒷산 토종식물이 모두 죽어갈 때 홀로 생명력을 자랑하며 산을 점령했다.
미국 자리공에 뒤덮인 산에 장포수 할아버지가 어느날부터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중략) 그렇게 한지 벌써 십오년이 되어 이제 뒷산이 제법 푸르고 무성해지고 있었다. 아빠는 미국자리공과 사철나무숲이 땅따먹기하듯 경계를 이루는 곳에 서서 장포수 할아버지 혼자 힘으로 그 숲을 가꾸었다고 몇번이나 강조했다.>
니은이가 힘들 때마다 ‘미국자리공과 사철나무가 경계를 이루는 곳’에 가서 쉬는 장면이 여러번 나오고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처럼 한때 미국자리공은 오염의 지표식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자리공은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염된 지역에서도 잘 자랄뿐이라고 합니다. 미국자리공은 죄가 없는 거죠. 이제는 미국자리공이 토양을 산성화시킨다기보다 산성 토양에서 잘 자랄 뿐이고, 숲속이나 음지에서 견디는 내음성(耐陰性)이 강해 쉽게 번성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어느 정도 자리 잡았습니다. ^^
미국자리공과 비슷한 식물로 우리 토종인 자리공과 울릉도에서 자라는 섬자리공이 있습니다. 미국자리공은 꽃과 열매가 아래로 쳐지면서 자라고 줄기가 붉은색입니다. 그냥 자리공은 꽃과 열매가 위로 향하고 줄기가 녹색인 점이 다르다는데, 거의 볼 수 없기 때문에 주변에서 보이는 자리공 비슷한 것은 미국자리공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
'꽃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참나리·능소화·창질경이, 7월 한강공원에 핀 꽃들 (19) | 2021.07.04 |
---|---|
누가 노란 호박꽃이 못생겼다고 하나? ^^ (28) | 2021.07.03 |
수레국화·꽃양귀비·헛개나무, 한탄강 재인폭포 가는 길에 만난 꽃들 (22) | 2021.07.01 |
하늘말나리·참나리·날개하늘나리, 여름 나리와 백합 총집합! (24) | 2021.06.26 |
민들레 비슷한 서양금혼초, 안면도수목원까지 점령하나? (18) | 2021.06.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