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야기

능소화, 박완서 소설에서 가장 강렬한 꽃 피다

우면산 2020. 6. 18.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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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도 능소화가 피기 시작했다. 주택가, 공원에서 벽 등 다른 물체를 타고 오르면서 나팔 모양 주황색 꽃을 피우는 것이 있다면 바로 능소화다. 경부고속도로, 올림픽대로의 방음벽이나 방벽, 남부터미널 외벽에도 연주황색 능소화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흔히 볼 수 있어서 잘 모르는 사람도 꽃 이름을 알면 “아, 이게 능소화야?”라는 말이 절로 나올 것이다.

 

능소화 사진. 서울에도 요즘 피기 시작했다.

 

박완서 소설 『아주 오래된 농담』에서 능소화는 여주인공 현금처럼 ‘팜 파탈(femme fatale)’ 이미지를 갖는 화려한 꽃으로 등장하고 있다. 능소화가 ‘무수한 분홍빛 혀’가 되기도 하고, ‘장작더미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되기도 한다. 박완서 소설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주는 꽃을 고르라면 단연 『아주 오래된 농담』에 나오는 능소화다. 그 다음이 「친절한 복희씨」에 나오는 박태기나무꽃이 아닐까 싶다.

 

 

능소화가 나오는 대목 하나만 읽어 보자. 현금은 이층집에 살았는데, 여름이면 이층 베란다를 받치고 있는 기둥을 타고 능소화가 극성맞게 기어올라가 난간을 온통 노을 빛깔로 뒤덮었다. 현금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능소화에 대해 이런 얘기를 하는 대목이 나온다.

 

"능소화가 만발했을 때 베란다에 서면 마치 내가 마녀가 된 것 같았어. 발 밑에서 장작더미가 활활 타오르면서 불꽃이 온 몸을 핥는 것 같아서 황홀해지곤 했지."

 

능소화는 중국이 원산인 덩굴성 나무다. 흡착근을 갖고 있어서 고목, 담장이나 벽을 잘 타고 10m까지 올라간다. 나무 껍질은 회갈색으로 길이 방향으로 잘 벗겨져 줄기가 좀 지저분해 보인다. 꽃은 6∼8월 피는데, 질 때는 동백꽃처럼, 시들지 않고 싱싱한 상태에서 송이째 뚝뚝 떨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 동네의 한 집도 능소화를 키우는데, 한여름 그 집 담장 밑에는 핀 꽃보다 많은 능소화 꽃잎들이 주황색 바다를 이룬다. 담장이나 벽을 타고 올라가는 능소화도 괜찮지만, 고목을 타고 올라가는 능소화가 가장 능소화다운 것 같다.

 

서울 남부터미널 외벽에 핀 능소화.

 

능소화(凌霄花)의 한자는 능가할 능(凌)에 하늘 소(霄), 꽃 화(花)여서 해석이 만만치 않은 글자 조합이다. ‘하늘 높이 오르며 피는 꽃’이란 뜻이다. 덩굴이 10여미터 이상 감고 올라가 하늘을 온통 덮은 것처럼 핀다고 이 같은 이름이 생긴 것 같다.

 

능소화는 흔히 양반집에서 심었기 때문에 ‘양반화’라고도 불렀다. 지금도 한여름 전통적인 양반 동네였던 서울 북촌에 가면 이집저집에 능소화가 만발한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평민집에서 능소화를 심으면 관아에 불려가 곤장을 맞았다는 얘기도 있다. 박경리의 『토지』에서도 능소화가 최참판 댁의 상징으로 나온다. ‘환이 눈앞에 별안간 능소화 꽃이 떠오른다. 능소화가 피어 있는 최참판 댁 담장이 떠오른다’는 대목이 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능소화가 늘어나면서 미국능소화가 점차 늘고 있다는 점이다. 전에 살던 아파트단지 방음벽에도 능소화를 심었는데, 꽃이 핀 것을 보니 미국능소화였다. 미국능소화는 꽃이 더 빨갛고 꽃통도 휠씬 길쭉하다. 마치 값싼 붉은 립스틱을 잔뜩 바른 것 같다. 그에 비해 우리 능소화는 색깔도 연하면서 더 곱고 꽃모양도 균형이 잘 맞는다. 기왕 심을 거면 미국능소화가 아닌 우리 능소화를 심으면 좋겠다.

 

미국능소화 사진. 능소화에 비해 꽃이 더 빨갛고 화통도 휠씬 더 길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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