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야기

한화 18연패, 삼미 슈퍼스타즈, 쥐똥나무

우면산 2020. 6. 16.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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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가 18연패 타이 기록을 세우면서 기존 최다 연패 기록을 갖고 있던 삼미 슈퍼스타즈가 주목을 받았지요.

 

프로야구 18연패는 1985년 삼미 슈퍼스타즈가 만든 기록입니다. 이 즈음의 삼미 슈퍼스타즈를 소재로 한 소설이 박민규 장편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입니다. 제가 쓰려고 하는 것은 이 소설에 나오는 쥐똥나무 이야기입니다. ^^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줄거리는 단순한 편입니다. 인천에 사는 한 ‘나’는 중학교에 입학하는 해(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면서 삼미 슈퍼스타즈 어린이 팬클럽에 가입합니다. 그러나 삼미는 1할2푼5리의 승률이라는, 전무후무한 패배 기록을 세웁니다. 다른 구단 어린이 회원들이 삼미 잠바를 입은 ‘나’를 보며 키득거리는 모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경험은 사춘기 소년에게 큰 상처를 입혔겠지요.

 

‘나’는 일류대에 들어갔지만 ‘정체 불명의 이질감’을 느꼈습니다. 삼미 슈퍼스타즈 팬으로, ‘최하위라는 심리적 문신’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 생활이 겉돌 수밖에 없고 그렇다보니 따분합니다.

 

그 즈음 ‘나’는 홍대 앞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술을 좋아하는 2년 연상의 여대생을 만납니다. 그녀는 삼미 슈퍼스타즈 얘기만 해주면 ‘허리가 휘어질 정도’로 웃음을 터트리며 좋아했습니다. 둘은 술을 마시며 젊음을 탕진합니다. 그 즈음 일화에 쥐똥나무가 나오고 있습니다.

 

<3월의 시작과 함께, 나는 첫발이 미끄러지듯 새 학기의 시작이 주는 쥐꼬리만 한 스트레스를 조르바에게 털어놓았다. (중략) 그래서 그날은 조금 과하게 술을 마셨다. 그럴 수 있는 일이었고, 물론 그녀와 함께였다. 다음날엔 그녀가 졸업 학기의 시작이 주는 쥐똥만 한 스트레스를 나에게 털어놓았다. 이거야 원, 다음날 학교를 결석할 만큼의 술을 마시게 되었다. 그런 일들이 자꾸만 생겨났다. 나와 그녀에게 아무 일이 없으면 조르바가 쥐며느리만 한 스트레스를 털어놓고, 마치 왈츠의 리듬처럼 그 다음 날엔 조르바의 친구가 쥐방울만한 스트레스를 털어놓았다. (중략) 결국 한 그루의 쥐똥나무만 한 스트레스가 서로의 마음 속에 자라나버렸고, 급기야 서로가 어우러진 울창한 쥐똥나무의 숲이 형성되어 버렸다. 결국 그해의 봄은 엉망진창이 되어갔다.>

 

 

쥐똥나무 꽃

 

쥐똥나무는 이름이 재미있는 나무입니다. 가을에 달리는 둥근 열매의 색이나 모양, 크기까지 정말 쥐똥처럼 생겼습니다. 아마도 박민규가 여러 나무 중 이 나무를 선택한 것도 재미있는 이름 때문이었을 것 같습니다.

 

쥐똥나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얼마전 소개했으니 참고 바랍니다.

 

https://sleepingcow.tistory.com/20

 

소설 얘기 이어가겠습니다. ‘나’는 졸업 후 국내 최대 대기업에 취직하고 가정도 꾸렸습니다. 여느 대기업 직장인처럼 『가정을 버려야 직장에서 살아남는다』는 책을 읽으며 새벽 5시에 집을 나와 자정 무렵 들어가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IMF로 인한 실직에다 ‘결혼생활에 의미가 없다’는 아내로부터 이혼 통보였습니다. 1998년 그는 삼진아웃을 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친구는 그에게 삼진아웃을 당한 것이 아니라 포볼을 고른 것이라며 이제 1루로 나가서 쉬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삼미가 보여준 진짜 야구를 해보자면서,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클럽을 결성하고 실제 야구단도 만듭니다. ‘나’는 다시 취직했지만 하루 6시간만 일하는, ‘나의 삶을 확보할 수 있는 직장’이었습니다.

 

이처럼 이 소설은 프로야구 초창기 최하위 성적을 기록한 삼미 슈퍼스타즈 스토리를 바탕으로 경쟁을 강요하는 사회와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작가는 무한경쟁 시대, 경쟁력 강화만 들리는 시대에는, ‘필요 이상으로 바쁘고, 필요 이상으로 일하는’ 세계에는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저녁이 있는 삶’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은 2003년 한겨레문학상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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