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야기

서양등골나물, 천혜의 요새 남한산성까지 점령하나

우면산 2020. 10. 1.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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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첫날인 30일 오랜만에 남한산성에 갔다. 투구꽃, 개쑥부쟁이, 까실쑥부쟁이, 향유에 고려엉겅퀴, 자주쓴풀까지 원없이 보았다. ^^ 역시 남한산성은 우리 야생화의 보고 중 하나다.

 

그런데 아래 사진처럼 성곽길 곳곳이 마치 눈이 온 듯 하얀 꽃이 번지고 있었다. 작은 깻잎처럼 생긴 잎을 가진 식물이 흰색의 자잘한 꽃송이들을 피우고 있었다. 생태계 교란 식물인 서양등골나물이었다.

 

남한산성 곳곳에 서양등골나물이 퍼지고 있다.

 

서양등골나물은 눈부신 흰색인 데다 다섯 개로 갈라진 꽃잎들이 뭉쳐 있는 것이 그런대로 예쁜 편이다. 이 꽃을 보고 “예쁜 꽃이 피었네”라고 말하는 사람을 많이 보았고, 남한산성의 한 카페에 가보니 꽃병에 서양등골나물을 꽂아 놓고 있었다. 하지만 서양등골나물은 지나치게 대량으로 번식해 우리 자생식물의 터전을 잠식하는 나쁜 식물이다.

 

서양등골나물.

 

 원래 서양등골나물은 1978년 서울 남산에서 처음 발견됐고, 인왕산·안산·우면산 등 서울 시내와 근교 산에 가보면 많다. 요즘은 경기도를 넘어 전국으로 퍼지는 중이긴 하지만, 비교적 우리 고유 식물들이 많은 남한산성도 파고 드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귀화식물은 많지만 대개 울창한 숲에는 들어가지 않고 햇볕이 잘 드는 나대지나 길가에서 자란다. 사람들이 손대지 않아 안정된 생태계에는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서양등골나물은 좀 다르다. 우선 음지에서도 견디는 힘이 강해 숲 속까지 들어가 대량 번식해 자생식물들이 살 공간을 차지해 버린다. 게다가 여러해살이풀이라 제거하지 않는 한 한번 뿌리를 내리면 계속 퍼질 수밖에 없다. 또 한 개체에서 바람을 타고 퍼지는 씨앗이 워낙 많고 발아력도 강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환경부는 서양등골나물을 비롯해 가시박, 돼지풀, 단풍잎돼지풀, 도깨비가지, 애기수영, 서양금혼초, 미국쑥부쟁이 등 16종을 생태계 교란 식물로 지정하고 있다. 이 중 산에서는 서양등골나물이, 강 주변에서는 가시박이 자생식물에 큰 피해를 주고 있다.

 

서양등골나물이라는 이름은 자생하는 등골나물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은 것이다. 자생 등골나물은 산에서 자라고 키도 서양등골나물보다 큰 편이다. 서양등골나물보다 좀 일찍 피고 약간 붉은 기운이 도는 것도 다르다.

 

등골나물

 

 서양등골나물은 우유병(milk sickness)을 일으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19세기까지 이 식물의 고향인 북아메리카에서는 우유를 먹으면 토하고, 손발을 떨며, 침을 흘리다 사망하는 사례가 많았다. 링컨 대통령의 어머니가 이 병으로 사망했다. 결국 서양등골나물을 섭취한 소·염소 등을 통해 우유에 들어간 독성물질이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는 이 식물이 자라는 곳에서 목축을 하지 않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서양등골나물이 보이면 즉시 뽑아 버리는 것이 좋다. 줄기의 아래쪽을 잡고 끌어당겨 뿌리까지 뽑아야 한다. 우리 식물의 보고(寶庫)인 남한산성이 더 이상 서양등골나물에 잠식당하기 전에 서양등골나물 제거작업을 대대적으로 펼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남한산성은 처음 성을 쌓은 삼국시대 이후 단 한번도 함락당한 적이 없는 천혜의 요새라는데, 결국 서양등골나물이 점령하게 놔둘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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