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서울 한강공원 난지지구를 지나다 본 보리밭입니다. ^^ 지난주에만 해도 아직 푸릇푸릇하더니 막 누렇게 익기 시작했습니다.
박완서 동화 「자전거 도둑」이 생각나서 몇장 담았습니다. 이 동화는 1970년대를 배경으로, 돈과 요령만 밝히는 어른들 틈에서 자신을 지켜나가려고 하는 열여섯 살 수남이의 성장 일기입니다.
주인공 수남이는 시골에서 상경해 청계천 세운상가 전기용품 도매상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수남이가 고향을 그릴 때 생각하는 이미지는 ‘바람이 물결치는 보리밭’입니다. 그가 일하는 가게 골목에 심한 바람이 불자 수남이는 시골 풍경을 떠올립니다.
<시골의 바람부는 날 풍경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보리밭은 바람을 얼마나 우아하게 탈 줄 아는가, 큰 나무는 바람에 얼마나 안달맞게 들까부는가, 큰 나무와 작은 나무가 함께 사는 숲은 바람에 얼마나 우렁차고 비통하게 포효하는가,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은 이 골목에서 자기 혼자뿐이라는 생각이 수남이를 고독하게 했다.>
그런데 주인 영감은 바람이 심하게 부는데도 배달을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배달 나갔을 때 자전거가 바람에 넘어져 옆 자동차에 약간의 상처를 냈습니다. 차 주인은 수남이에게 수리비를 요구하지만 수남이가 내지 못하자 수남이 자전거를 묶어둡니다. 이 시련 앞에서 수남이는 구경꾼들의 부추김에 따라 자물쇠를 채운 자전거를 들고 돌아오는 것을 택합니다.
주인 영감은 수남이가 한 짓을 나무라기는커녕 잘했다고 칭찬합니다. 하지만 죄책감을 느낀 수남이는 주인 영감의 이중성에 실망하면서 ‘도덕적으로 자기를 견제해 줄 어른’을 그리워하며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수남이가 귀향하려고 짐을 꾸릴 때도 다시 보리밭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동화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소년은 아버지가 그리웠다. 도덕적으로 자기를 견제해 줄 어른이 그리웠다. 주인 영감님은 자기가 한 짓을 나무라기는커녕 손해 안 난 것만 좋아서 '오늘 운 텄다'고 좋아하지 않았던가.
수남이는 짐을 꾸렸다. 아아, 내일도 바람이 불었으면. 바람이 물결치는 보리밭을 보았으면.
마침내 결심을 굳힌 수남이의 얼굴은 누런 똥빛이 말끔히 가시고, 소년다운 청순함으로 빛났다.>
이처럼 보리밭은 이 동화에서 도시 생활을 하는 열여섯 살 소년에게 향수의 대상이자 순수했던 시절의 상징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40년전 쓴 동화여서 수남이가 한 행동과 해결방식에 대해 여러 견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또래 중 시골에서 자란 분들은 보리밭에 얽힌 추억이 많을 것입니다. 어릴적 가을걷이를 끝내고 나면 바로 논에 보리를 심는 집이 많았습니다. 보리는 본격적인 추위가 오기 전인 초겨울, 한 4~5cm쯤 자랐을 때 보리밟기를 해주어야 튼튼하게 자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웃자라 수확량이 줍니다. 학교에서 수업을 하지 않고 보리밟기 행사에 가는 날도 있었습니다. '꽃으로 박완서를 읽다'는 「자전거 도둑」을 포함해 박완서 소설 24편을 꽃의 관점에서 바라본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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