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초봄 야생화의 대표주자 중 하나인 얼레지의 시즌입니다. ^^ 남쪽엔 얼레지가 진작 피었고, 드디어 서울 근교에서도 피기 시작했습니다. 얼레지 하면 가장 유명한 가평 화야산 얼레지도 꽃망울이 생긴 사진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 곧, 늦어도 다음 주 정도면 필 것 같습니다. ^^
얼레지는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꽃입니다. 얼레지를 처음 본 것은 2005년 3월이었습니다. 벌써 16년 전이네요. ^^ 이름도 특이한 데다 이른 봄에 꽃대가 올라오면서 자주색 꽃잎을 뒤로 확 젖히는 것이 파격적입니다. 어느 정도 젖히느냐면 꽃잎이 뒤쪽에서 맞닿을 정도입니다.
이 모습을 보는 사람에 따라 아주 다르게 묘사합니다. ^^ ‘한국의 야생화’ 저자 이유미는 ‘산골의 수줍은 처녀 치고는 파격적인 개방’이라고 했고, ‘제비꽃 편지’ 저자 권오분은 물속을 향해 다이빙하는 수영선수처럼 날렵하게 생겼고, 화려한 것이 ‘압구정동 지나는 세련된 아가씨 같은 꽃’이라 했습니다. 한성대 언어교육원 임소영 책임연구원은 한 기고에서 “온몸을 뒤로 젖히고 한쪽 다리로 얼음을 지치는 피겨 선수를 닮았다”고 표현했습니다.
김훈은 소설 ‘내 젊은 날의 숲’에서 “꽃잎을 뒤로 활짝 젖히고 암술이 늘어진 성기의 안쪽을 당돌하게도 열어 보였다”고 표현했습니다. 꽃말도 질투, 바람난 여인 등으로 다양한데, 어떻든 참 느낌이 다양한 꽃인 것이 분명합니다.
서양인들에게는 이 꽃이 개 이빨처럼 보인 모양입니다. 영어로 얼레지가 ‘dog’s tooth violet‘이니 ‘개이빨 제비꽃’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네요. 분홍색 꽃잎이 활짝 젖혀졌을 때 보이는 진한 보라색 삐죽삐죽한 무늬가 마치 개 이빨처럼 생겼다고 그렇게 붙인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서양꽃 중에서는 ‘시클라멘’이 꽃잎을 뒤로 확 젖힌 것이 얼레지와 많이 닮았습니다.
이처럼 얼레지가 꽃잎을 뒤로 젖히는 이유는 벌레들에게 꿀의 위치를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꽃잎을 뒤로 젖히면 삐죽삐죽한 꿀 안내선(honey guide)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얼레지라는 이름은 녹색 이파리 여기저기에 자줏빛 얼룩이 있어서 붙은 것입니다.
저는 시골 출신이지만 얼레지 같은 꽃을 보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아무 산에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아직 찬바람이 남아 있을 때 꽃을 피우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얼레지도 초봄 꽃들처럼 이른 봄, 주변 식물에 잎이 달리기 전에 얼른 꽃을 피운 다음 새싹을 띄우는 전략을 씁니다. 그래서 부지런하지 않으면 보기 힘든 꽃이기도 합니다.
얼레지는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할지 모르지만 야생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입문할 때 처음 대하는 기본 꽃들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등산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올봄 야생의 얼레지를 보는 것을 목표로 해 보면 어떨까요. 얼레지를 보면 야생화의 매력에 푹 빠져들지도 모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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