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한탄강 재인폭포와 비둘기낭폭포를 다녀오는 길에 길가에 자귀나무 연분홍색 꽃이 피어 있는 것을 보았다. 이 어여쁜 꽃이 미모를 뽐내고 있는데 어찌 그냥 지나갈 수 있겠는가? ^^ 지난해 이맘때 자귀나무를 소개한 적이 있지만 한번 더 소개해야겠다.
윤후명의 중편소설 ‘둔황의 사랑’엔 ‘자귀나무 꽃빛의 홍조’라는 매혹적인 표현이 나온다. 자귀나무꽃에 대한 표현 중 단연 최고다. ^^ 소설에서 주인공 ‘나’는 주간지에 근무할 때 공후를 켰다는 노인을 취재하러 간 적이 있다. 그러나 노인은 이미 사망한 후였고, 대신 그 손녀를 만나 할아버지한테 배웠다는 고조선의 노래 ‘공후인’을 듣는다. ‘자귀나무 꽃빛의 홍조’는 이 대목에서 나오고 있다.
<소녀는 단정히 앞으로 손을 모으고 한 번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입을 벌렸다. 무슨 노래일까, 우리는 귀를 기울였다. (중략) 볼에 발그랗게 홍조를 띠고 있었는데, 첫소리가 나올 때, 그 긴장과 흥분을 말해 주듯 목청이 바르르 떨렸다. (중략) 작은 손수건을 미리 뒤로 동여맨 동그란 얼굴은 연두빛 블라우스 위에 마치 얹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뺨에는 자귀나무 꽃빛의 담홍색 홍조가 물들어 있었고, 코에는 땀방울이 송송 배어 나와 있었다. 그리고 입을 벌릴 때마다 가지런한 잇바디 사이로 나타나는 빨간 혀끝. (중략) 그리고 자귀나무 꽃빛의 홍조가 두 볼을 물들이고 떨리는 그 노랫소리가 새어 나왔다.>
자귀나무 꽃을 눈여겨본 사람이라면 그 홍조가 얼마나 예쁘면서도 자극적일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자귀나무 꽃에서 명주실처럼 가늘게 생긴 것이, 진분홍에서 미색으로 점차 변하는 것이 수꽃이다. 이 수술이 25개 정도 모여 부채처럼 퍼져 있고, 각각의 끝에는 작은 구슬만한 것이 보일 듯 말 듯 달려 있다. 암꽃은 수꽃들 사이에서 피지 않는 꽃봉오리처럼 망울들을 맺고 있다. 자귀나무 꽃은 엷게 퍼지는 향기도 맑고 싱그럽다.
자귀나무는 어린시절 고향의 야산이나 마을 입구 또는 집 마당에서 흔히 보아서 친근감을 주는 나무다. 서울 시내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는 아니지만, 청계천에도 곳곳에 심어놓았고 경복궁 경회루 근처에도 꽃색이 붉은색에 가까운 화려한 자귀나무들을 볼 수 있다.
자귀나무는 박범신 장편소설 ‘소금’에도 나오고 있다. 주인공이 여자친구 시우의 임신 사실을 아는 대목에 “달이 떴는지, 자귀나무 그림자가 창에 어른거리고 있었다. 밤이 되면 대칭을 이룬 잎사귀들이 오므라들어 포개지기 때문에 부부금실을 상징하는 합환수(合歡樹)로 불리는 나무였다. 우희의 마지막 모습이 자귀나무에 겹쳐 떠올랐다”는 글이 있다. 작가가 자귀나무를 등장시킨 것은 주인공과 시우가 나중에 결합할 것이라는 복선을 까는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꽃색깔이 진분홍색이 아니라 노란색에 가까운 왕자귀나무도 있다. 왕자귀나무는 자귀나무보다 귀한데, 주로 남부지방과 서해안에서 볼 수 있다. 아래 사진은 인천수목원에서 담은 것이다.
자귀나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 ‘잠 자는 데 귀신 같다’에서 온 것, 자귀(나무 깎아 다듬는 연장의 하나)의 손잡이를 만드는 나무라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얘기들이 있다. 그러나 이동혁 풀꽃나무칼럼니스트는 “잎의 수면운동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되는 별칭 중 하나인 좌귀목(佐歸木)에서 유래한 이름”이라며 “좌귀목이 ‘좌귀나무’가 되었다가 지금의 자귀나무로 변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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