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을 산책하다가 원효대사상 받침대에 웬 풀이 자라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처음엔 누가 장난으로 꽂아놓은 것 아닌가 하고 다가가 보았는데 가까이서 자세히 보니 진짜 풀이었다.
어쩌다 씨앗이 바람에 날리다 원효대사상 받침대 돌 틈에 자리 잡고 뿌리를 내린 자란 것이다. 원효대사가 인자한 표정으로, 바로 아래 자리잡은 풀이 잘 자라는지 금방이라도 고개를 숙일 것 같은 구도였다. ^^ 풀이 자라기에는 너무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잘 자라고 있었다. 좀 있으면 꽃대가 올라와 꽃이 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 풀은 어떤 식물일까. 큰방가지똥이었다. 방가지똥이나 큰방가지똥은 전체적인 모습은 엉겅퀴 닮았고 꽃은 민들레를 닮은 노란 꽃을 피운다. 특히 가시가 험상굳게 생긴 큰방가지똥이 엉겅퀴를 닮았다. 봄부터 10월까지 꽃이 필 정도로 번식력이 강하고 남부지방에서는 초겨울에도 꽃을 볼 수 있다.
둘 중 큰방가지똥을 더 자주 주변에서 볼 수 있다. 큰방가지똥은 방가지똥에 비해 전체적으로 크고 잎도 두텁고 잎 표면에 광택이 있는 점이 다르다. 원효대사상에 있는 식물은 잎이 두텁고 잎 표면에 광택이 있는 것이 큰방가지똥이었다.
방가지똥은 왜 이런 이름을 가졌을까. 계명대 김종원 교수는 ‘한국식물생태보감 1’에서 “‘방가지'는 곤충 방아깨비의 방언”이라며 “방아깨비는 위험에 처하면 배설물을 내놓는데, 마치 방가지똥 종류가 상처를 입으면 흰 유액을 내놓는 것과 같다. ‘똥’ 자는 그렇게 덧붙여진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해 동인문학상을 받은 김숨의 소설 ‘떠도는 땅’은 1937년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 거주한 조선인17만여 명이 스탈린 정권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비극을 다룬 소설이다. 임신부 ‘금실’을 중심으로, 한 화물열차 칸에 탄 조선인 27명이 겪는 살인적인 고난과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대화체 중심으로 전하고 있다. 금실이 천신만고 끝에 카자흐스탄에 도착해 출산한 후 기아에 시달리는 장면에 방가지똥이 나오고 있다.
<젖은 메말라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다. 배가 고픈 아기는 젖가슴을 통째로 빨아 삼킬 듯 세차게 젖꼭지를 빤다. 그녀는 두꺼비만 한 보리빵 한 덩이로 사흘을 버텼다. 양을 불리려 조심씩 떼어 들에서 뜯은 낯선 야생풀과 함께 죽을 쑤어 먹었다. 쥐가 갈아먹은 듯 잎이 뾰족뾰족하고 질긴 야생풀에는 민들레처럼 노란 꽃이 매달려 있었다. 피어나기 전부터 강렬한 햇빛과 건조한 모래바람에 시달린 꽃은 애늙은이처럼 지치고 슬퍼 보였다. 그녀는 꽃을 떼어내 버리고 뿌리와 잎만 씻어 죽에 넣었다.>
이 식물 이름이 나오지는 않지만, ‘민들레처럼 노란 꽃’이 피고 ‘쥐가 갈아먹은 듯 잎이 뾰족뾰족하고 질긴 야생풀’은 방가지똥에 가장 가까운 것 같다. 특히 큰방가지똥이 ‘쥐가 갈아먹은 듯 잎이 뾰족뾰족’하다. 집은 물론 식량 등 기본적인 생필품도 없이 황야에서 새 삶을 시작해야 하는 사람들이 거친 환경 속에서 자라는 방가지똥과 닮았다. 큰방가지똥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와 아메리카 대륙에 분포하는 식물이다.
◇더 읽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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