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야기

진분홍→미색, 자귀나무꽃의 싱그러운 그라데이션

우면산 2020. 6. 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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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귀나무 꽃이 피면 한번 소개해야지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남양주 천마산 가는 길에 이미 자귀나무꽃이 활짝 피어 있고 일부는 시들기까지 한 것을 보았다. ‘아차!’ 싶었다.

 

요즘 전국 산이나 공원에서 마치 공작새가 연분홍색 날개를 펼친 듯한 화사한 꽃을 볼 수 있다. 길이 3㎝ 정도의 붉은 명주실을 부채처럼 펼쳐 놓은 모양 같기도 하다. 자귀나무다.

 

자귀나무꽃. 진분홍에서 미색으로 변하는 것이 수꽃, 망울처럼 맺혀 있는 것이 암꽃이다.

 

 명주실처럼 가늘게 생긴 것은 자귀나무 수꽃의 수술이다. 이 수술이 25개 정도 모여 부채처럼 퍼져 있고, 각각의 끝에는 작은 구슬만한 것이 보일 듯 말 듯 달려 있다. 암꽃은 수꽃들 사이에서 피지 않는 꽃봉오리처럼 망울들을 맺고 있다.

 


자귀나무는 어린시절 고향 야산이나 마을 입구 또는 집 마당에서 흔히 보아서 친근감을 주는 나무다. 꽃이 피면 엷게 퍼지는 향기도 맑고 싱그럽다. 꽃 송이를 코끝에 가져가 보면 부드러운 감촉도 좋다. 서울 시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는 아니지만, 청계천에도 몇 그루 심어놓았고, 경복궁 향원지 근처에도 꽃색깔이 붉은색에 가까운 화려한 자귀나무들을 볼 수 있다.

 

경복궁 향원정 근처에 있는 자귀나무. 꽃 색깔이 유난히 붉다.

 

자귀나무는 밤이 오면 양쪽으로 마주 난 잎을 서로 맞댄다. 그래서 옛부터 신혼집 마당에 심어 부부 금슬이 좋기를 기원했다. 소가 잎을 잘 먹는다고 소밥나무, 소쌀나무라고 부르는 지방도 있다.

 

자귀나무 잎이 붙은 현상을 수면(睡眠)운동이라고 부른다. 자귀나무가 수면 운동을 하는 것은 낮에는 최대한 잎 면적이 넓혔다가, 밤에는 수분과 에너지 발산을 최대한 억제하기위한 전략이다. 콩과 식물이라 가을에는 길이가 한 뼘쯤인 콩깍지 열매가 달린다.

 

꽃색깔이 진분홍색이 아니라 노란색에 가까운 왕자귀나무도 있다. 왕자귀나무는 자귀나무보다 귀해서 어쩌다 보면 한번이라도 더 눈에 담고자 자주 뒤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주로 남부지방과 서해안에서 볼 수 있다.

 

왕자귀나무꽃. 꽃색깔이 노란색에 가깝다. 인천수목원 버전.

윤후명의 중편소설 『둔황의 사랑』엔자귀나무 꽃빛의 홍조라는 매혹적인 표현이 나온다. 한 소녀가 고대 악기 공후를 연주할 때그 뺨에는 자귀나무 꽃빛의 담홍색 홍조가 물들어 있었. 자귀나무꽃에 대한 표현 중 단연 최고가 아닐까 싶다. ^^

 

자귀나무꽃을 눈여겨본 사람이라면 그 홍조가 얼마나 예쁘면서도 자극적일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진분홍색에서 아래로 갈수록 밝은 미색으로 변해가는 꽃잎의 그라데이션(gradation·한 색에서 다른 색으로 점진적으로 변해 가는 것)이 일품이다. 그 모습이 마치 붉은 명주실 실타래를 풀어낸 듯하다고 영어 이름은 비단나무(silk 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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