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제주도와 남해안 등 따뜻한 지역에 가면 파란 겨울 하늘을 배경으로 노란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나무를 볼 수 있습니다. 멀구슬나무입니다. 지난주 신안 퍼플섬을 다녀올 때 곳곳에, 특히 인가 주변에 이 나무가 많은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 서울 주변에서는 보기 힘든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연히 유명한 그림 속에서 또 이 나무를 보았습니다. 어떤 그림이냐면, 이중섭의 ‘섶섬이 보이는 풍경’입니다. 아래 사진에서 오른쪽 위쪽에 노란색으로 그려진 나무가 멀구슬나무입니다. ^^
화가 이중섭은 6·25때 제주도로 피난을 와서 일 년 정도 서귀포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초가집에서 셋방을 살았습니다. 1951년의 일입니다. ‘섶섬이 보이는 풍경’은 그의 집 앞마당에서 그린 풍경이라고 합니다. 이중섭은 가고 없지만, 그림은 남았고 그림 속 멀구슬나무도 그대로 남은 것입니다. 그가 머물던 집 마당에 있는 멀구슬나무는 아직도 해마다 풍성한 열매를 달고 있다고 합니다. ^^
제주도 시절도 가난했지만 이중섭이 행복했을 거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아내 남덕과 아이들이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섶섬이 보이는 풍경’ 등 당시 그림이 따뜻한 분위기인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멀구슬나무가 이중섭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에 그린 그림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가족은 1951년말 부산 판잣집으로 이주했고 이듬해 아내와 자식들은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일본으로 떠났습니다.
제주도와 남해안에 왜 이렇게 멀구슬나무가 많은지 궁금했습니다. 어귀에 멀구슬나무가 없는 동네가 없다시피했고, 멀구슬나무를 가로수로 길게 심어놓은 동네도 있었습니다. 좀 찾아보니 이 나무가 성장이 빠르고 재질이 단단하며 무늬가 아름다워 이 나무로 가구나 악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예로부터 딸을 낳으면 시집갈 때 장롱을 해주려고 오동나무를 심었는데, 남쪽에서는 오동나무 대신 멀구슬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
노란 대추 모양의 멀구슬나무 열매는 새들의 먹이라고 합니다. 옛날에는 아이들이 이 열매를 먹기도 했다고 하는데, 요즘에는 동네마다 아이들이 귀해서인지 나무마다 열매를 온전히 주렁주렁 달고 있었습니다. ^^ 열매 속에는 굵은 알갱이가 있는데, 절에서는 이 알갱이로 염주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멀구슬나무라는 이름은 나무구슬 즉, '목(木)구슬'이 변한 이름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
◇더 읽을거리
-신안 퍼플섬에서 만난 나무들, 후박나무·팽나무·예덕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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