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이야기

느릅나무·플라타너스? 박수근 그림 속 나무는 어떤 나무?

우면산 2022. 1. 30.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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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좌우에 걸린 그림들을 제쳐놓고 빨려들듯이 곧장 나무 앞으로 다가갔다.

나무 옆을 두 여인이, 아기를 업은 한 여인은 서성대고 짐을 인 한 여인은 총총히 지나가고 있었다.

내가 지난날, 어두운 단칸방에서 본 한발 속의 고목(枯木), 그러나 지금의 나에겐 웬일인지 그게 고목이 아니라 나목(裸木)이었다.(중략)

나는 홀연히 옥희도 씨가 바로 저 나목이었음을 안다. 그가 불우했던 시절, 온 민족이 암담했던 시절, 그 시절을 그는 바로 저 김장철의 나목처럼 살았음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또한 내가 그 나목 곁을 잠깐 스쳐간 여인이었을 뿐임을, 부질없이 피곤한 심신을 달랠 녹음을 기대하며 그 옆을 서성댄 철없는 여인이었을 뿐임을 깨닫는다.>

 

위 대목은 박완서 작가가 6·25전쟁 중 만난 화가 박수근(1914~1965)과의 인연을 바탕으로 쓴 소설, ‘나목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장면이다. 화가 옥희도가 꽃을 다시는 피우지 못하는 고목이 아니라 잠시 성장을 멈추고 어려운 한 시기를 극복하는 나목이었음을 주인공이 깨닫는 장면이다. 여기서 나오는 그림은 박수근 화백이 1962년 그린 나무와 두 여인이다.

 

박수근 '나무와 두 여인'(1962년)

 

그럼 나무와 두 여인에 나오는 저 나무, 그러니까 소설 나목을 관통하는 저 나무는 무슨 나무일까. 그것이 큰 의미를 갖지 않을지 모르지만 한번 짐작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 우선 느릅나무라는 주장이 있다. 박수근의 고향 강원도 양구 양구교육지원청 뒷동산에는 박수근 나무가 있다. 수령 300년 된 느릅나무다. 이 나무를 소개하는 안내문에는 박수근 화백이 양구보통학교 재학 시절 자주 그림 소재로 삼았던 나무라고 소개하고 있다.

 

양구 '박수근 나무'. 덕수궁 박수근 전시회에서 담은 것이다.

 

여기서 한발 나아가 나무와 두 여인에 나오는 나무도 이 나무 아니냐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중간에서 옆으로 휘어진 전체적인 나무 모습이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나무와 두 여인속 나무를 자세히 보면 가지치기를 해준 흔적이 남아 있다. 보통 야생 상태로 자라는 느릅나무는 가지치기를 잘 해주지 않는다. 나무와 두 여인은 박수근 화백이 1962년 그린 것이다. 작가는 보통 관찰을 통해 그림을 그렸다는데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이 나무를 그렸겠느냐는 생각도 들지 않을 수 없다.

 

창경궁 앞 플라타너스 가로수.

 

가지치기를 한 나무의 형태로 보아 플라타너스(양버즘나무)로 짐작해볼 수도 있다. 박수근은 6·25 즈음 서울 동대문 근처 창신동에 살았다. 박수근은 자신이 살던 창신동 골목 풍경을 주로 그렸고, 거기에는 플라타너스가 많았다. 그리고 플라타너스는 워낙 성장이 빨라 뭉텅뭉텅 가지치기를 해줄 수밖에 없다. 특히 화가의 다른 그림 골목안을 보면 중간중간이 모질게 잘린 곁가지들 모양이 영락없는 플라타너스다.

 

박수근 '골목안'. 덕수궁 전시회에서 담은 것이다.

 

플라타너스는 은행나무와 함께 우리나라, 특히 서울의 대표적인 가로수다. 매연 등 공해에 관계없이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는데다 넓적한 잎은 한여름의 따가운 햇빛을 가려주고 시끄러운 소리까지 줄여주니 가로수로 제격이기 때문이다. 플라타너스는 가장 오래 전에 우리나라 가로수로 채택된 나무였다. 그러니까 느릅나무냐, 플라타너스냐는 고향 나무냐, 서울 나무냐로 요약할 수 있겠다. ^^ 

 

느릅나무든 플라타너스든 무슨 나무인지가 뭐가 중요하겠는가. 박수근이 이 나무를 통해 고난 속에서도 잉태하고 있는 생명을 그렸다는 점이 중요할 것이다. ^^ 그림 속 나무들을 더 관찰하고 싶다면 요즘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박수근 전시회에 가서 확인해보기 바란다. 전시회는 31일까지 열린다.

 

 

◇더 읽을거리

 

-박수근 그림 속 꽃들을 찾아서 

 

-방울 열매가 3개, 진짜 버즘나무 감상하세요 ^^  

 

-한강 지킴이, 참느릅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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