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소세키 소설 『마음』에 나오는 삼나무들

우면산 2020. 7. 11.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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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 소설 『마음』은 100여년 전에 쓴 글인데도 요즘 소설을 읽는 듯 했다. 이 소설은 1914년 아사히신문에 연재한 것이다. 이광수가 소설 『무정』을 매일신보에 발표한 때가 1917년이니 비슷한 시기다. 그런데도 글이 세련됐다고 할까. 옛글에서 보이는 의고체 문장이 아니었 다. 무엇보다 주변 풍경이나 인물 심리 묘사가 자연스러워 어색한 느낌을 주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마음』을 읽고 ‘깔끔하게 청소한 다다미방을 연상시키는 소설’이라고 했는데 괜찮은 표현인 것 같다. 소세키 소설을 처음 읽어보았는데, 왜 그를 ‘일본 근대문학의 선구자’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 후』, 『도련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도 읽어볼 생각이다. ^.^

 


소설 줄거리는 복잡하지 않다. 작품 속 지식인 선생님은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작은아버지에게 재산을 빼앗긴 후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는다. 그리고 젊은 시절 친구가 자신이 마음에 둔 여인을 사랑하자, 친구의 자존심에 건드려 자살에 이르게 했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은 그 여인과 결혼해 살지만 결국 죄의식을 견디지 못하고 파국에 이르는 내용이다.

소설 전반은 선생님을 존경하는 대학생 화자 시선으로, 후반은 선생님의 편지 형식으로 썼다. 소설이 다소 갑작스럽게 끝나고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궁금증을 많이 남기는 것은 아쉽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소재 또는 상징으로 나오는 식물을 찾는다면 무엇일까. 단풍나무, 박달나무도 나오지만 삼나무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우선 삼나무가 나오는 두 대목을 보자.

 

삼나무 잎. 굽은 바늘 모양인 잎이 돌려난다.

 

<한쪽 귀퉁이에 있는 열 평 남짓한 공간에 작약나무들이 서 있었는데 아직 때가 아닌지라 꽃을 피운 것은 한 그루도 없었다. 선생님은 작약나무들이 서 있는 밭 근처에 있던 낡은 평상 위에 큰대자로 누우셨다. 나도 그 모퉁이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선생님은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고 계셨다. 나는 주위를 둘러싼 어린 잎들의 빛깔에 완전히 넋을 잃었다. 그 어린 잎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니 똑같은 빛깔은 하나도 없이 모두 달랐다. 한 그루의 단풍나무에서 뻗어나온 가지라 해도 그 빛깔과 생김새가 가지각색이다.

가느다란 삼나무 묘목 꼭대기에 걸쳐둔 선생님의 모자가 바람에 날려 떨어졌다.>

 

<그렇게 우린 이야기를 마치고 고이시카와 쪽으로 발길을 돌렸네. 비교적 바람도 없고 따뜻한 날이었지만 때가 겨울인 만큼 공원 안은 꽤 조용했지. 특히 찬서리를 맞고 초록잎을 모두 떨어버린 삼나무들의 갈색 몸뚱이가 우중충한 하늘로 앙상한 가지를 벌리고 늘어서 있는 모습을 돌아볼 땐 잔등이가 시린 느낌마저 들었네.>

 

두 대목 다 눈앞 풍경을 보여주듯 묘사가 생생하다. 첫번째는 화자가 대학 졸업논문을 제출하고 홀가분한 기분에 선생님과 함께 교외를 산책할 때 일화인데, 선생님이 뭔가 과거를 숨긴다는 것을 느끼는 대목이다. 선생님 태도는 뭔가 위태위태하다. 그것이 모자를 걸쳐둔 ‘가느다란 삼나무 묘목’, 그러니까 부러질 듯 아슬아슬한 삼나무 묘목으로 나타난 것 아닐까.

 


두번째 대목은 화자가 친구의 마음 속 애정의 물꼬를 가로막기위해 “정신적으로 발전하고자 하지 않는 자는 어리석어”라는 말로 친구 자존심에 상처를 준 직후 장면이다. 두 사람 사이가 이미 어긋나 있는 것이 삼나무들이 초록잎은 모두 떨어졌고, 앙상한 가지를 벌리고 늘어서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 있는 것 같다.

 

삼나무(Japanese cedar)는 영어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일본 원산이라 일본에서는 흔한 나무다. 그래서 소세키 소설 『마음』에 자주 등장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삼나무 전체 모습. 30~40m까지 자라는 상록 교목이다.

 

30~40m까지 자라는 상록 교목으로, 내한성이 약해 우리나라에선 경남·전남과 제주도 등 남부지방에서만 생육 가능하다. 삼나무 잎은 굽어진 바늘 모양이고 나선 모양으로 돌려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수피는 적갈색이고 세로로 길고 가늘게 갈라지는 특징이 있다.

 

우리나라에선 남부지방에서 조림수로 많이 심었다. 장성 축령산 편백나무숲, 고흥 봉래산 편백나무숲 등에 가보면 편백나무만 아니라 삼나무도 대량 심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제주도 비자림로 도로 확장을 위해 숲속 나무를 대거 잘라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는데, 이 나무도 삼나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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