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정세랑 소설 '시선으로부터'와 레후아꽃

우면산 2020. 11. 26.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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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는 정세랑 소설 『시선으로부터,』를 읽고 하와이 화산지대에서 피는 레후아꽃이 어떤 꽃인지 궁금했다. 검색해보니 우리나라에는 없는 식물로, 우리나라 수목원 온실에서 볼 수 있는 병솔나무꽃과 비슷한 꽃이었다.

 

이 소설은 6·25 직후 하와이로 이주했다가 독일로 건너가 미술을 공부하고 귀국해 미술가·작가로 활동한 심시선과 그 가족들 이야기다. 심시선이 두 번의 결혼으로 만들어낸 가계 구성원들은  그녀가 죽고 10년이 지난 후 하와이에 모여 단 한 번의 제사를 지내기로 한다. 큰딸 명혜는 이렇게 말한다.

 

 

“기일 저녁 여덟시에 제사를 지낼 겁니다. 십 주기니까 딱 한 번만 지낼 건데, 고리타분하게 제사상을 차리거나 하진 않을 거고요. 각자 그때까지 하와이를 여행하며 기뻤던 순간, 이걸 보기 위해 살아 있었구나 싶게 인상 깊었던 순간을 수집해 오기로 하는 거예요. 그 순간을 상징하는 물건도 좋고, 물건이 아니라 경험 그 자체를 공유해도 좋고.”

 

'시선으로부터' 표지

 

가계 구성원들은 하와이를 여행하면서 심시선과 얽힌 에피소드를 회상하고 무엇을 제사상에 올릴지 생각한다. 이를 통해 하와이에 오기까지 어떻게 살았고 무엇을 고민했는지 등을 각자의 시선으로 드러내고 있다.

 

 

제사날 저녁에 첫째딸 명혜는 훌라춤을 선보였고, 둘째딸 명은은 빅아일랜드에서 선물 받은 오히아 레후아 꽃을 올렸다. 막내딸 경아는 맛있는 커피를  선보였다. 명혜의 첫째딸 화수는 팬케이크를, 둘째딸 지수는 무지개 사진을 제사상에 올렸다. 시선의 며느리인 난정과 그의 딸 우윤은 각각 레이(꽃목걸이)와 파도를 선물했다. 경아의 딸 해림은 알록달록한 새의 깃털을 모아 상에 올렸다. 여성의 시선으로 여성들의 느낌과 심리, 아직도 남아 있는 가부장제에 불편함 또는 거부감을 잘 묘사했다고 느꼈다.

 

시선으로부터,
국내도서
저자 : 정세랑
출판 : 문학동네 20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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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시선은 실존 인물은 아니다. 작가 정세랑은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은 무엇보다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라고 했다. 작가는 “나의 계보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그것이 김동인이나 이상에게 있지 않고 김명순(신문학 최초의 여류문인)이나 나혜석(첫 여성화가이자 작가)에게 있음을 깨닫는 몇 년이었다며 “만약 혹독한 지난 세기를 누볐던 여성 예술가가 죽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일가를 이뤘다면 어땠을지 상상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작가는 또 “심시선의 이름은 돌아가신 할머니의 이름을 한 글자 바꾼 것인데, 할머니가 가질 수 없었던 삶을 소설로나마 드리고자 했다”고 썼다.

 

JTBC의 한 예능 프로에 나온 오히아 레후아 꽃.

 

레후아꽃은 둘째 딸 명은이 빅아일랜드 화산지대를 걷다가 한 식물학자로부터 선물 받는 꽃이다. 그 장면은 다음과 같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쯤에 잠겨 걷다가 지난해 용암이 흘러내린 모양 그대로 굳은 들판에서 무언가를 채집하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중략)

“뭘 채집하고 계신 거예요?”

명은 쪽에서도 관심을 보여야할 것 같아 들여다보며 물었다.

“오히아 레후아예요.”

“어떻게 용암이 굳자마자 날아와서 핀 거죠?”

“레후아 꽃의 씨앗은 바람이 아니라 물로 이동해요. 굉장하죠?”

식물은 주로 그림이나 조각으로만 들여다보던 명은이 식물학자가 내미는 꽃송이를 받아들어 자세히 보았다. (중략)

유용한 충고에 감사를 표하며 꽃송이를 돌려주자 식물학자가 잠시 모자챙을 젖히고 명은을 보더니, 종이 사이에 그것을 조심스레 끼우고 구석에 라틴어 학명도 적어 다시 건넸다.

“선물이에요.” (중략)

“고마워요. 제가 빅아일랜드에서 찾고 있었던 게 이거였던 것 같아요.”

 

JTBC의 한 예능 프로에 나온 오히아 레후아 꽃.

 

오히아 레후아(Ohia Lehua) 꽃은 빅아일랜드의 상징화라고 한다. 이 식물은 나무와 꽃이 각각 다른 이름을 가진 것이 특이하다. 그러니까 오히아 나무에서 피는 레후아꽃이다. 이렇게 부르는 것은 다음과 같은 하와이 전설에 전해오기 때문이다.

 

‘불의 여신 펠레가 오히아라는 멋진 청년에게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이미 아름다운 여인 레후아와 연인관계에 있던 오히아는 펠레의 청혼을 거절했다. 화가 난 펠레는 오히아를 화산지대에서 자라는 회색빛 나무로 만들어버렸다. 이 소식을 들은 레후아는 다른 신들을 찾아다니며 오히아를 되돌려 달라고 호소하지만 다들 펠레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이루어줄 수 없다. 하지만 레후아의 간절한 마음을 불쌍히 여겨 둘이서 오래 함께하라며 레후아를 오히아 나무에서 자라는 빨갛고 아름다운 꽃으로 만들어주었다.’

 

찾아보니 오히아 레후아는 도금양(桃金孃)과 식물이었다. 열대·아열대 지방에 특히 호주와 남아메리카에 많은 종이 분포하는데, 꽃이 방사대칭으로 양성화인 것이 특징이라고 했다. 코알라 먹이인 유칼립투스가 도금양과 식물이다. 우리나라 수목원 온실에 가면 병을 닦는 솔처럼 생긴 병솔나무를 볼 수 있는데, 이 나무도 도양금과에 속한다. 레후아꽃도 병솔나무와 비슷해 보였다.

 

병솔나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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