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야기

자주조희풀 보면 생각나는 분들

우면산 2020. 8. 21.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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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산에 가면 연보라색에 병 모양으로 특이한 꽃, 병조희풀과 자주조희풀을 볼 수 있습니다.

 

둘은 얼핏 보면 비슷하게 생겼지만 잘 보면 다릅니다. 잎으로는 구분하기 어렵고 꽃 모양을 봐야 합니다. 먼저 병조희풀은 꽃 모양이 청자병을 닮았습니다. 아래쪽이 볼록한 거죠. 또 화피의 끝이 좁고 뒤로 젖혀져 있습니다.

 

병조희풀.

 

반면 자주조희풀은 꽃 아래쪽이 볼록하지 않아 전체적으로 원기둥 모양입니다. 또 화피조각의 가장자리가 넓고 깊이 갈라져 있습니다. 아래 사진과 동영상을 보면 확실히 다르죠?

 

자주조희풀.

 

조희풀이라는 특이한 이름은 ‘종이풀’에서 변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옛날에 조희풀 잎과 줄기껍질로 종이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름에 풀이 들어가 있지만 줄기의 아래쪽은 목질화해 겨울에도 남아있기 때문에 나무입니다. 지난 주말 남한산성에 갔더니 자주조희풀이 많았고 또 가장 싱싱하고 예쁠 때였습니다. ^^

 

자주조희풀. 남한산성에서 담은 것이다.

 

자주조희풀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분들이 있습니다. 서울대 이상옥·이익섭·김명렬 명예교수님으로, 이분들은 정년 퇴임 후 산과 들을 다니며 야생화를 사진에 담았습니다. 대표적인 야생화모임 중 하나인 ‘인디카’에서 활동하신 분들입니다.

 

세 교수님들은 좋은 사진은 메일로 지인들에게 보내 소감을 나누었는데, 2008년쯤부터 가톨릭대 김창진 교수(2016년 별세)가 사진을 받으면 시를 써서 화답했습니다. 마치 옛날 문인이 그림을 그리면 다른 묵객이 시로 화제(畵題)를 다는 것과 같았죠.

 

이렇게 3년이 지나자 1000편의 시가 모였습니다. 세 명예교수님들은 이 중 200여  편을 골라 꽃 사진과 함께 2013년 시집으로 묶었습니다. 그 시집 제목이 『오늘은 자주조희풀 네가 날 물들게 한다』입니다.

 

『오늘은 자주조희풀 네가 날 물들게 한다』 표지

 

이상옥 명예교수가 자주조희풀 사진을 올리자 김창진 교수가 쓴 시 '파랗게/파랗게/오/진한 계집애의 입술이어/…오늘은/자주조희풀/네가/날/물들게 한다'를 표제작으로 한 시집이었습니다. 이 시를 읽은 다음부터는 자주조희풀을 잊을 수가 없었고 더욱 애틋해 보였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일독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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