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야기

박완서 작가가 분꽃을 가장 좋아한 이유는?

우면산 2020. 10. 22.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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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작가 박완서는 생전인 2002년 한 독자모임과 만남에서 “무슨 꽃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분꽃이라고 했다. 그 많은 꽃 중에서 왜 분꽃을 가장 좋아하는지 궁금했다.

 

작가의 산문집 『두부』를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작가는 구리 노란집으로 이사한 해 늦은봄, 심지도 않았는데 분꽃이 여봐란 듯이 모습을 드러냈다고 반가워했다. 그러면서 “내 아득한 유년기로부터 나를 따라다니다가 이제야 겨우 현신(現身)할 자리를 얻은 것처럼 느껴져 반갑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했다”며 “오랜 세월 잊고 지냈지만 분꽃은 나하고 가장 친하던 내 유년의 꽃”이라고 했다.

 

 

요즘 서울 주택가 등을 지나다보면 붉은색·노란색·분홍색·흰색 등 다양한 색의 분꽃을 화단이나 화분, 담장가에 심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분꽃.

 

분꽃은 6월부터 피기 시작해 한여름 내내 볼 수 있는 꽃이지만 아직까지 피어 있는 것도 많다. 꽃은 대부분 지고 환약 같은 까만 씨앗이 맺혀 있는 분꽃도 볼 수 있다. 분(粉)꽃이라는 이름은 화장품을 구하기 어려운 시절 여인들이 씨 안에 있는 하얀 가루를 얼굴에 바르는 분처럼 썼다고 붙인 이름이다.

 

분꽃은 재미있는 점이 참 많은 꽃이다. 마당에 분꽃이 피어 있었다면 해질녘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분꽃은 해가 뜨면 꽃잎을 오므렸다가 오후 4~5시쯤부터 다시 피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어 이름이 '4시꽃(Four o'clock flower)'이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나팔꽃과는 정반대다.

 

 

분꽃의 색깔은 정말 다양하다. 한번은 이 중 노란색이 제일 예쁜 것 같아 노란색 분꽃 씨를 심어보았다. 그런데 다음 해 기대와 달리 붉은색 꽃 위주로 피어 실망한 적이 있다. 원래 분꽃의 꽃 색 유전은 멘델의 법칙 중 중간유전(불완전 우성) 적용을 받는다. 하지만 우리 주변의 분꽃은 여러 꽃 색 유전자가 섞이면서 한 그루에서 붉은색, 노란색 꽃잎이 나오기도 하고, 심지어 두 색이 같이 있는 꽃잎, 두 색이 점점이 섞인 꽃잎까지 나온다.

 

가을에 분꽃 아래에 검은 환약같이 생긴 씨앗이 많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열매를 가져다 심으면 다음 해 봄 십중팔구 싹이 날 것이다. 발아율이 아주 높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 가꾸기 쉬운 꽃이다.

 

분꽃 씨앗

 

분꽃은 남미 원산의 원예종 꽃이다. 어릴 적 화단이나 장독대 옆에는 맨드라미, 채송화, 봉선화, 나팔꽃과 함께 분꽃 한두 그루가 자라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많은 추억을 준 꽃이다. 고향 여자애들은 분꽃 아랫부분을 쭉 빼서 귀걸이를 만들었다. 17세기 전후 국내에 들여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우리와 400여 년 함께해온 꽃이니 우리 꽃이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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