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흥길의 단편소설 ‘기억 속의 들꽃’에는 ‘쥐바라숭꽃’이라는 꽃 이름이 나온다. ‘해바라기를 축소해 놓은 모양의 동전 만한 들꽃’이다. 이 꽃은 어떤 꽃일까.
이 소설은 6·25때 만경강 부근 피난민들이 지나는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나'는 피난민들이 떠나고 남겨진 고아 명선이를 우연히 집으로 데려온다. 어머니는 명선이를 박대하다가 명선이가 금반지를 내밀자 반색하면서 우리집에서 살게 한다. ‘나’와 명선이가 부서진 다리의 철근 위에서 놀다가 꽃을 발견하는 장면이 나온다.
거대한 교각 바로 위 무너져내리다만 콘크리트 더미에 이전에 보이지 않던 꽃송이 하나가 피어 있었다. 바람을 타고 온 꽃씨 한 알이 교각 위에 두껍게 쌓인 먼지 속에 어느새 뿌리를 내린 모양이었다.
"꽃이름이 뭔지 아니?"
난생 처음 보는 듯한, 해바라기를 축소해 놓은 모양의 동전 만한 들꽃이었다.
"쥐바라숭꽃……."
나는 간신히 대답했다. 시골에서 볼 수 있는 거라면 명선이는 내가 뭐든지 다 알고 있다고 믿는 눈치였다. 쥐바라숭이란 이 세상엔 없는 꽃 이름이었다.엉겁결에 어떻게 그런 그림을 지어낼 수 있었는지 나 자신 어리벙벙할 지경이었다.
쌓인 먼지에 뿌리내리는 쥐바라숭꽃은 전쟁 중에 홀로 강인하게 살아가는 명선이를 상징하는 꽃이다. 다시 다리 철근 위에서 놀던 어느날, 명선이는 비행기 폭음에 놀라 한송이 들꽃처럼 떨어져 죽는다. 이 소설은 이처럼 한 소녀의 죽음을 통해 전쟁의 비극을 보여주고, 전쟁이 야기하는 어른들의 비인간성도 고발하는 소설이다.
그럼 쥐바라숭꽃은 실제로는 어떤 꽃일까. 쥐바라숭꽃은 ①교각 위 먼지 속에 뿌리를 내렸고 ②난생 처음 보는 듯하고 ③해바라기 모양의 노란색이고 ④동전 만한 크기라고 했다. 이 조건을 충족하는 꽃이 있을까.
먼저 떠오르는 꽃은 민들레다. 해바라기처럼 노란색이라는 점, 흙이 조금만 있어도 잘 자라는 점 등을 그 근거로 들 수 있다. 그러나 민들레는 해바라기와 달리 갈색의 꽃 중심부(대롱꽃 다발)가 없다는 점에서 모양이 다르다. 또 민들레는 흔하디 흔한 꽃이어서 ‘난생 처음 보는 듯한’ 꽃도 아닐 것이다.
다음은 개망초다. 1984년 KBS에서 이 소설을 TV문학관 드라마로 만들었는데, 개망초로 쥐바라숭꽃을 표현했다고 한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꽃의 크기는 동전만 하다는 점에서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개망초는 꽃잎으로 보이는 혀꽃이 흰색이라는 점에서 쥐바라숭꽃일 수 없다. 더구나 흔한 꽃이어서 난생 처음 보는 듯한 꽃일 수도 없다.
노란 꽃이 피는 씀바귀 아닐까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교각 위 먼지 속에 뿌리를 내릴 수 있고, 동전 만한 크기까지도 맞다. 그러나 역시 전체적인 인상이 해바라기 축소판과는 거리가 있다.
해바라기처럼 생겼다는 점에 방점을 두고 루드베키아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루드베키아가 해바라기와 비슷하게 생긴 것은 맞지만 꽃이 동전보다 훨씬 크다는 점에서 쥐바라숭꽃일 수 없다. 또 키가 50센티미터 정도로 자라서 교각 먼지에서 자라기도 어려울 것이다. 결론적으로 쥐바라숭꽃은 실제하지 않는 ‘이 세상엔 없는 꽃’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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