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서자 갈색 단풍잎을 거의 온전히 달고 있는 가로수 나무 무리가 눈에 들어옵니다. 요즘 가로수와 조경수로 늘어나고 있는 대왕참나무입니다. ^^
이 나무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가 서울 중구 만리동 손기정기념공원에 있습니다. 손기정이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했을 때 히틀러에게 부상으로 받은 묘목을 심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손기정기념공원은 손 선수 모교인 양정고 자리입니다.
연휴에 손기정기념공원에 가 보니 이 나무가 상당한 크기로 자라 있었습니다. 한쪽으로 살짝 기운 것은 원래 저 나무 옆에 건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손기정 선수는 시상식 때 일본 국가 ‘기미가요’가 나오자 고개를 푹 숙이고 화분으로 일장기가 박힌 가슴을 가렸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이 나무를 월계수로 알고 있었습니다. 마라톤 우승자에게는 월계관과 월계수를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이 나무 옆에는 월계수라는 표지석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자란 것을 보니 이 나무는 북아메리카 원산인 대왕참나무였습니다. 요즘 가로수로 많이 심는 나무와 같은 종이었습니다.
논란이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일부에서는 1936년 시상식 때 들고 있는 화분 속 묘목, 그리고 손기정 기념관에 보관 중인 월계관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왕참나무가 아니라 루브라참나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르브라참나무는 대왕참나무 비슷하지만 열매가 좀 더 길고 잎 결각이 덜 깊은 나무입니다.
그래서 독일이 루브라참나무로 월계관을 만들고, 묘목은 모양이 비슷한 대왕참나무로 잘못 준 것은 아닐까, 루브라참나무 묘목을 받았는데 대왕참나무가 자란 것은 중간에 무슨 일이 생겼기 때문은 아닐까 등과 같은 다양한 궁금증이 나오고 있습니다. 손기정 선수가 시상식에서 묘목을 받은 것은 8월이었고, 40여일에 걸쳐 10월에 귀국했고, 이 묘목을 양정고 교정에 심은 것은 이듬해 봄이었다고 합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거죠. 나름대로 근거를 갖고 하는 얘기들이니 체육계 등에서 속 시원하게 밝혀주면 좋겠습니다. ^^
대왕참나무는 길쭉한 잎 가장자리가 여러 번 깊이 패어 들어가 마치 임금 왕(王)자 같습니다. 그래서 대왕참나무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1980년대 한 종묘회사가 대량 도입하면서 임의로 붙였다고 합니다. 또 이 나뭇의 잎 꼭짓점에 날카로운 바늘이 있는데, 그래서 서양 사람들은 '핀오크(Pin Oak·바늘참나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이 나무와 손기정과 인연을 고려해 대왕참나무보다는 ‘손기정참나무’나 ‘손참나무’ 등으로 바꾸는 것이 어떠냐는 주장이 있습니다. 공감할 수 있는 주장인데, 그 전에 시상식 사진 속 나무와 관계 등이 명확히 밝혀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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