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섬진강 일대로 꽃구경을 갔다. 일요일 구례 산수유마을과 화엄사를 보고 점심을 먹은 곳이 구례읍 백련산방이라는 음식점이었다. 한식을 먹고싶어 검색한 곳인데, 알고보니 TV에도 여러 번 나온 꽤 유명한 집이었다. 백련산방정식(1인분에 1만5000원)을 시켰더니 고추장불고기를 주메뉴로 재첩국, 생선구이, 온갖 나물이 푸짐하게 나왔고 맛도 좋았다. ^^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식당이 있는 곳 일대가 바로 구례장터였다. 구례장터라는 말에 윤대녕 중편 ‘3월의 전설’이 떠올랐다. 이 소설은 우연한 만남과 헤어짐 등 덧없는 인연을 주제로 하고 있는데, 산수유에 취한 비구니와 유부녀의 일탈을 다루고 있다. 구례 산수유마을 산수유와 화개 벚꽃, 섬진강 매화가 필 때가 배경이다. 바로 요즘이다. ^^
소설에서 주인공은 강원도 홍천 콘도에서 우연히 만난 20대 후반 여자에게서 한 비구니가 출가했다가 환속한 얘기를 듣는다. 비구니는 산수유가 만개한 어느 봄날 산수유마을을 지나다 서울에서 내려온 신사에게 손목이 잡혀 정이 통했고, “내일은 구례장이니 장터 어디에서 만나 서울로 함께 숨어가자”는 제안을 받는다.
비구니는 확답하지 않고 “꽃들이 참 부산스럽게도 폈네요”라고만 말한다. 다음날 비구니는 노란 승복을 입고 장터에서 종일 돌처럼 서 있었지만 신사는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비구니는 환속했지만 해마다 3월이면 직행버스를 타고 내려와 산수유마을과 구례장터를 서성거리기 때문에 내려가면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였다.
주인공은 환속한 비구니가 혹시 스무 살 때 사귄 여성이 아닐까 생각하며 산수유마을에 내려가 보기로 한다. 주인공은 쌍계사 입구에 여장을 풀고 구례 장날에 장터를 서성거려보지만 비구니를 만나지 못한다. 주인공은 언뜻 홍천 콘도에서 만난 여자가 바로 환속한 비구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주인공은 다음날이 구례장이었지만 더 이상 머무를 까닭이 없다고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소설을 맺는다.
‘3월의 전설’에는 3월 내내 구례에서 살지 않았으면 쓰기 어려운 섬세한 묘사들이 적지 않다. 예를 들면 “불과 열흘 만인데 산수유는 이미 데쳐 내고 삶아 낸 것처럼 색이 빠져 맥없이 지고 있었다. 매화가 질 때면 산수유도 따라 지는 모양이었다”는 대목이 그렇다.
점심을 먹고 이 소설이 기억나 구례 장터를 둘러보았지만 노란 승복을 입고 장터를 서성거리는 비구니는 발견하지 못했다. 구례 장날은 3일과 8일이다. 지난 일요일은 7일이어서 만나지 못했을까. ^^
◇산수유 관련 더 읽을거리
-새봄 저 노란꽃 산수유일까 생강나무일까? [꽃맹 탈출]
'책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의 작가’ 박완서, 엄마의 꽃은 무엇을 골랐을까? (4) | 2021.06.09 |
---|---|
우아하게 물결치는 보리밭, 박완서의 ‘자전거 도둑’ (22) | 2021.05.24 |
냉이·달래·쑥·미나리, 김훈의 '봄나물을 먹으며' (6) | 2021.03.02 |
박완서 책 무엇부터 읽을까? 베스트5 추천 (33) | 2021.01.21 |
‘꽃으로 박완서를 읽다’ 오디오북 출시 ^^ (8) | 2021.0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