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이야기

탱자나무가 가장 비극적으로 쓰이면 위리안치

우면산 2021. 10. 1. 09:01
반응형

 

갑자기 위리안치라는 말이 자주 오르내립니다. ^^ 민주당 이재명 경지기사는 며칠 전 대장동 관련 의혹을 제기하는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에 대해 “봉고파직하도록 하겠다”, 김기현 원내대표에 대해서는 “남극 쪽 섬으로 위리안치시키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봉고파직(封庫罷職)관리를 파면하고 관고를 봉하여 잠근다는 뜻이고, 위리안치(圍籬安置)유배된 죄인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가시로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가두는 형벌을 뜻합니다. ^^

 

위리안치는 뭘로 어떻게 하는 걸까요? 먼저안치(安置)’는 멀리 귀양 보내 그곳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형벌인데, 크게 4가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고향에 두는 본향 안치, 먼 변방에 두는 극변 안치, 먼 섬에 두는 절도(絶島) 안치, 그리고 더욱 엄격히 출입을 금하기 위해 탱자 가시 울타리를 치는 위리안치가 있었다고 합니다(조선왕조실록).

 

요즘 탱자나무 모습.

 

대표적으로 폐주 연산군과 광해군이 위리안치 형벌을 받았습니다. 연산군은 어머니인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들고 간 인물 권주에게 사약을 내리고, 그 자식을 외딴섬에 위리안치하도록 하명했습니다. 그러나 자신도 1506년 중종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나 강화도 교동도에 위리안치되는 운명을 맞았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중종1 9월 7일자에 연산군에 교동에 도착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안치한 곳에 이르니, 위리(圍籬)한 곳이 몹시 좁아 해를 볼 수 없었고, 다만 한 개의 조그마한 문이 있어서 겨우 음식을 들여보내고 말을 전할 수 있을 뿐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답니다.

 

탱자나무 열매와 날카로운 가시.

 

광해군도 이복동생인 영창대군을 강화도에 위리안치했는데 자신도 1623년 인조반정으로 쫓겨나고 강화도에 위리안치됐습니다. 숙종 시절 우암 송시열도 포항 장기현에 유배됐을 때 위리안치당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탱자나무가 가장 비극적으로 쓰인 것이 위리안치였습니다.

 

탱자나무는 어릴 적 고향 마을에선 과수원이나 집 울타리로 흔히 쓴 나무였지만, 요즘은 벽돌 담장에 밀려 시골에서도 보기 힘든 나무입니다. 중국이 원산지로, 추운 곳에서 자라지 못해 주로 경기도 이남에서 볼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자라기는 하지만 보기가 쉽지 않은 나무라 어쩌다 만나면 고향 친구를 만난 듯 반갑습니다. ^^ 경복궁 고궁박물관 옆 정원에 있는 탱자나무를 보면 열매가 온전하게 익지 못하고 조기에 쭈굴쭈굴 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탱자나무 열매.

 

어릴 적 가시에 찔려가며 노란 탱자를 따서 갖고 놀거나 간간이 맛본 기억이 있습니다. 탱자를 따기 위해 아무리 조심스럽게 손을 집어넣어도 여지없이 가시에 찔렸습니다. 그래서 위리안치당한 사람이 탱자나무를 넘어 도주할 생각은 못했을 것 같습니다.

 

탱자나무 꽃.

 

5월쯤 탱자나무 꽃이 피면 꽃향기가 참 좋지만, 그래도 탱자나무는 꽃이 필 때보다 탁구공만 한 노란 열매가 달릴 때가 더 돋보입니다. ^^ 요즘이 딱 노란 탱자가 알맞게 익는 계절입니다. 이재명 지사도 후보 유세 중 노란 탱자 열매를 보고위리안치라는 단어가 떠올랐는지 모르겠습니다. ^^

 

 

◇더 읽을거리

 

-하얀 탱자꽃, 노랗게 익은 탱자 그리고 위리안치 

 

-상록 참나무, 가시나무 3형제를 소개합니다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