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석류꽃빛 다홍치마 입고싶은 ‘토지’ 봉순네

우면산 2022. 6. 8.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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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소설 토지에서 봉순네가 김서방댁과 나누는 대화 내용입니다. 봉순네는 봉순의 어머니로, 젊은 시절 남편을 잃고 최참판댁 침모로 살고 있습니다. 서희에게는 자신을 버리고 떠난 별당아씨 대신 어머니 같은 존재입니다. 귀녀가 최참판댁 당주 최치수 살인에 관여했음을 가장 먼저 눈치챌 정도로 사려 깊은 여성이기도 합니다. 봉순네가 김서방댁과 나오는 대화에 요즘 피기 시작한 석류꽃이 나옵니다. ^^

 

석류꽃. 통영.

 

<"시끄럽소, 들으나마나. 주지 말고 야속다 하지 말 일이지."

봉순네는 돌아앉아 버린다.

"우째서 모두 내 말이라 카믄 노내기 챗국겉이 그리 싫어하노. 그런데 니 석류꽃은 머할라꼬 줏노?"

"아까바서 줏소."

"아깝다니 그기이 어디 쓰이나?"

"멍도 안 들고, 시들지도 않고 우찌나 이쁜지."

"미쳤다. 할 일도 없는갑다."

"해가 들믄 시들 것 아니요."

"사십이 넘은 제집이 그래 그 꽃 가지고 사깜 살 것까?"

"애기씨 줄라꼬요. 바구니에 수북이 담아놓으니께 볼만 안 하요? 이런 빛깔 다홍치마가 있다믄 한 분 입어보고 싶소."

"니도 가리늦기 맴이 싱숭생숭하는갑다. 서방 없는 과부라 할 수 없고나. 서방 생각이 나서 그러제?"

음탕하게 웃는다. 봉순네는 성이 나서 노려본다.

"나잇살이나 묵어감서 우찌 입정이 그렇소? 그러니께 밤낮 내 것 퍼주고도 남한테 좋은 소리 못 듣지.">

 

석류꽃.

 

석류꽃이 떨어졌으니 이맘때이거나 조금 더 지난 때인 것 같습니다. 봉순네는 시들지도 않고 떨어진 석류꽃을 줍고 있습니다. 벌써 바구니에 수북한 모양입니다. 그걸 보고 김서방댁은 나이 들어 소꿉놀이하려고 그러느냐고 놀리고, 봉순네는 애기씨(서희) 주려고 한다고 답합니다. ^^ 그러면서 석류빛 다홍치마가 있다면 입어보고 싶다는 봉순네….

 

 

지난 5월말 통영에서 본 활짝 핀 석류꽃.

 

서희에게는 엄마 별당아씨가 석류꽃을 실에 꿰어준 추억이 있는 모양입니다. 서희가 할머니 윤씨부인을 잃고 별당 연못에서 엄마를 그리워하는 장면에도 석류꽃이 나옵니다.

 

<서희는 허리를 굽혀 연못가에 얼굴을 비춰 본다. 옥같이 맑은 조그마한 얼굴이 물 위에 뜬다. 한 송이 연꽃같이 보인다. 그러나 서희는 어머니의 얼굴로 본다.

‘서희야?’

빙긋이 어머니는 웃는다.

‘머리가 뜨겁구먼. 방에서 놀지 않고 어디 갔었지? 감기 들면 할머님께서 꾸중하실 텐데.’

‘…….’

‘꽃을 실에 꿰어 달라구? 그러지. 석류꽃이 많이 떨어진 모양이구나. 간밤에 바람이 불더니만…. 이렇게 이렇게 동그랗게 하면 족두리가 될까? 어디 머리에 올려 보자.’

그러나 어머니의 얼굴은 간 곳이 없고 사나이의 얼굴이 물 위로 떠올랐다.

(중략)

서희는 어느덧 저도 모르게 연못가 흙모래를 쓸어다가 연못 속에 던지고 있었다. 산산이 부서지는 얼굴, 그것은 서희 자신의 얼굴이었다.>

 

석류꽃.

 

석류나무는 내한성이 약해서 서울 등 중부지방에서는 보기 어렵습니다. 지난주 통영을 여행하다 전혁림 미술관 근처에서 석류꽃이 특유의 붉은색으로 피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석류꽃을 보자 얼마 전 읽은 소설 토지에서 석류꽃이 나오는 장면들이 떠올라 정리해 보았습니다. ^^

 

석류가 열린 모습.

 

석류나무는 이란·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과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인 도입 식물입니다. 이란 등이 페르시아 지역이었고 여기로 한자로 안석국(安石國)이라 불렀습니다. 안석국에서 들여온 혹처럼 울퉁불퉁한 과일이라는 뜻으로 안석류(安石榴)라고 부르다가 석류로 변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초기에 중국을 통해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5~7월 꽃받침이 통 모양이고 육질이며 끝이 6갈래로 갈라진 꽃이 핍니다. 9~10월이면 붉은 과육이 터지면서 투명 구슬 같은 씨를 드러냅니다. ^^

 

어릴 적 고향 고모네 집에는 뒤뜰에 제법 큰 석류나무가 있었습니다. 여름에 붉은색과 노란색이 묘하게 섞인 석류꽃이 피고, 석류꽃이 진 다음에는 석류가 커갔습니다. 주먹만해져서 붉은색을 띠기 시작하면 신 석류맛이 생각나 따고 싶은 마음도 커졌지만 꾹 참았습니다. 추석즈음 석류가 다 벌어지면 고모가 한 개씩 줄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어느 날 고향에 내려가 보니 그 석류나무를 베어낸 것을 보았습니다. 허전함이 컸지만 무슨 사연이 있겠거니 생각하고 이유도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더 읽을거리

 

-통영 박경리기념관에서 만난 꽃과 나무들 

 

-능소화, 박완서 소설에서 가장 강렬한 꽃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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