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백석이 사랑한 꽃, 수선화(김연수 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을 읽고)

우면산 2022. 2. 15.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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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백석(1912~1996)이 사랑한 나무를 고르라면 당연히 갈매나무일 것입니다. 백석이 1948년 남한 문단에 마지막으로 발표한 시, ‘남(南)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의 마지막 부분엔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가 나옵니다. 이 시는 백석이 해방 직후 만주를 헤매다 신의주에 도착했을 즈음 쓴 시인데, 절망적인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외롭게 눈을 맞고 서 있는 갈매나무로 표현했습니다. 신경림 시인은 책시인을 찾아서에서이 갈매나무야말로 백석의 모든 시에 관통하는 이미지라고 극찬했습니다. ^^

 

계방산 갈매나무.

 

그렇다면 백석이 사랑한 꽃을 고르라면 어떤 꽃일까요? 그 단초를 김연수 장편소설일곱 해의 마지막을 읽다가 발견했습니다. 이 소설은 백석이 북한에서 번역 작업에 몰두하다 1956년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해 마지막으로 시(‘아동문학에 발표한 나루터라는 시)를 발표하기까지 7년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중 1935년 첫 시집을 내려고 준비 중인 백석이 신문사 동료 현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습니다.

 

<“제목은?

현이 화제를 바꿨다.

시집 제목? 저문 6월의 수선이라고 할까봐.”

기행(백석)의 대답에 현이 눈을 치켜떴다.

수선? 저문 6월의 수선?”

수선이라면, 그것도 6월의 수선이라면 두 사람이 공유하는 기억이 있었다. 이슬비 내리던 그해 6월의 무더운 밤, (중략) (준의 결혼피로연에) 가보니 방 하나를 통영 출신 여학생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중략) 기행은 그중 한 여학생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머리가 까맣고 눈이 크고 코가 높고 목이 패고 키가 호리낭창한 사람이었다. 그는 첫눈에 반했다.>

 

거문도 수선화.

 

백석이 사랑한 여인으로 자야와 함께 통영 박경련이 유명합니다. 소설에 나오는 통영 출신 여학생이 바로 박경련입니다. 백석은 짝사랑하던 통영 여인의 집에 가 청혼을 했으나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이었습니다. 그런데 백석이 시집 사슴을 시인 신석정에게 보내자, 답례로 신석정이수선화라는 헌시를 썼고, 백석이 다시 그에 대한 답례로 수필 편지를 썼습니다. 여기에 통영의 여인을 향한 애틋한 감정이 드러납니다.

 

<남쪽 바닷가 어떤 낡은 항구의 처녀 하나를 나는 좋아하였습니다. 머리가 까맣고 눈이 크고 코가 높고 목이 패고 키가 호리낭창하였습니다. (중략) 총명한 내 친구 하나가 그를 비겨서 수선이라고 하였습니다. 그제는 나도 기뻐서 그를 비겨 수선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한 나의 수선이 시들어갑니다. 그는 스물을 넘지 못하고 또 가슴의 병을 얻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이만하고, 나의 노란 슬픔이 더 떠오르지 않게 나는 당신이 보내주신 맑고 고운 수선화의 폭을 치어놓아야 하겠습니다.>

 

거문도 수선화.

 

김연수가 이런 기록과 일화를 바탕으로 소설에 저문 6월의 수선이라는 표현을 쓴 것 같습니다. 이 정도 사연이면 백석이 가장 사랑한 꽃으로 수선화를 꼽아도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

 

마침 수선화가 남녘에서 피고 있는 계절입니다. 수선화 중에서 거문도 수선화가 가장 예쁘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거문도 수선화는 흰색 꽃잎에 컵 모양의 노란색 부화관(덧꽃부리)이 조화를 이룬 금잔옥대(金盞玉臺)입니다. 금 술잔을 옥대에 받쳐놓은 모양이라는 뜻이죠. 수선화는 머리가 까맣고 눈이 크고 코가 높고 목이 패고 키가 호리낭창한’ 통영 아가씨와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아마 통영에도 지금쯤 수선화가 피었을 겁니다. ^^

 

 

◇더 읽을거리

 

-계방산에서 만난 '굳고 정한' 갈매나무 

 

-갈매나무 &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관람 후기 

 

-이른 봄 피는 수선화, 세 종류만 알아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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