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으로 유명한 소설가 조세희씨가 얼마전(지난달 25일) 80세의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난쏘공’에서는 팬지가 난장이의 딸 영희를 상징하는 꽃으로 나옵니다.
아시는 분이 많겠지만, 이 소설은 1970년대를 배경으로 난장이인 아버지와 어머니, 영수, 영호, 영희 등 낙원구 행복동에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도시 소외계층 가족이 주인공입니다. 난장이 가족은 화단에 팬지를 심거나 화분에 팬지를 가꾼 모양입니다. 소설에서 영희는 팬지꽃 앞에서 ‘줄 끊어진 기타’를 치는 열일곱살 아가씨입니다.
<영희는 온종일 팬지꽃 앞에 앉아 줄 끊어진 기타를 쳤다. ‘최후의 시장’에서 사온 기타였다. 내가 방송통신고교의 강의를 받기 위해 라디오를 사러 갈 때 영희가 따라왔었다. 쓸 만한 라디오가 있었다. 그런데, 영희가 먼지 속에 놓인 기타를 들어 퉁겨보는 것이었다. 영희는 고개를 약간 숙이고 기타를 쳤다.>
그런데 이 집에 재개발 사업으로 인한 철거 계고장이 날아듭니다. 아파트 입주권은 나오지만, 입주비가 없는 마을 주민들은 거간꾼들에게 입주권을 팔 수밖에 없었습니다. 난장이 가족도 승용차를 타고 온 사나이에게 입주권을 파는데, 이 대목에서도 팬지꽃이 나옵니다.
<그날 밤 승용차 안의 사나이가 우리 동네의 나머지 입주권을 모두 사 버렸다. 그는 다른 투기업자들이 이십이만 원에 사는 것을 이십오만 원씩 주고 모두 사 버렸다. 그날 밤에도 영희는 팬지 꽃 앞에 앉아 기타를 쳤다. 영희는 팬지 꽃 두 송이를 따 하나는 기타에 꽂고 하나는 머리에 꽂았다. 그리고, 꼼짝도 하지 않고 기타만 쳤다. 사나이가 아버지에게 담배를 권했다.
“이십오만 원이 분명하죠?”
어머니가 물었다. 사나이를 따라온 나이 든 사람이 검은 가방을 열어 돈을 보여 주었다.>
영희는 입주권을 되찾기위해 ‘줄 끊어진 기타와 팬지 꽃 두 송이’만을 갖고 집을 나갑니다. 오빠 영호는 영희를 찾아 헤매다 꿈을 꾸는데, ‘영희가 팬지꽃 두 송이를 공장 폐수 속에 던져 넣는’ 꿈을 꿉니다. 영희를 상징하는 팬지꽃이 폐수 속에 던져지는 것은 영희의 순수성이 훼손될 것임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영희는 투기업자를 따라가 그의 사무실에서 일하며 함께 생활합니다. 그 투기업자에게 순결을 빼앗긴 영희는 투기업자를 마취시키고 그의 가방 속에 있는 입주권을 갖고 돌아오지만, 아버지가 벽돌 공장 굴뚝에서 작은 쇠공을 쏘아올리다 추락사했다는 말을 듣습니다.
이 소설에서 팬지는 순수한 영희를 상징하면서, 소설에 시적이고 동화적 분위기를 불어넣는 소도구로 쓰인 것 같습니다. 팬지는 유럽 원산의 제비꽃을 개량한 것으로, 겨울 찬 바람이 가시자마자 등장하는 꽃입니다. 여러 가지 색깔로 개량했지만, 흰색·노란색·자주색 등 3색이 기본색이라 삼색제비꽃이라고도 부릅니다. 지금은 한겨울이지만 두어달 있으면 노란 팬지가 길거리에 등장할 것입니다. 그때가 기다려집니다.
◇더 읽을거리
-팬지 페튜니아 메리골드 베고니아 제라늄, 5대 길거리꽃부터 알자
-팬지, ‘한여름 밤의 꿈’에서 꽃즙으로 사랑 만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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