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점심시간에 서울 서소문 배재어린이공원 옆을 지나다 한 건물 마당에 등나무 꽃이 핀 것을 보았습니다. 등나무 덩굴은 화단에서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면서 멋진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
가까이 가 보았습니다. ^^ 등나무 꽃은 잎과 함께 연한 보라색 꽃이 밑으로 처지면서 달립니다. 꽃송이가 마치 포도송이 같죠? 꽃 중앙부에 노란색 무늬로 포인트를 주고 있습니다. ^^ 노란색 무늬 포인트를 준 것은 칡꽃과 비슷합니다. 등나무와 칡은 둘다 콩과 식물입니다. '갈등'이라는 말이 칡과 등나무가 얽힌 것을 어원으로 하는 것 잘 아실 겁니다.
등나무는 대부분 학교·공원 등에 그늘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심지만 중부 이남의 산과 들에서는 저절로 자랍니다. 꽃에서 나는 향기가 좋습니다. 꽃이 지고나면 부드러운 털로 덮인 꼬투리가 주렁주렁 달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등나무는 몇 그루만 심어도 가지가 덩굴로 뻗어 나가면서 짧은 기간에 좋은 그늘을 만들어줍니다. 덩굴식물이기 때문에 다른 나무나 지지대를 감으면서 올라가는 특징이 있습니다. 다른 나무들을 감고 자라는 달갑지 않은 점도 있지만 등나무는 아름다운 꽃과 향기,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는 고마운 나무입니다.
등나무 그늘은 학교의 상징이나 같은 것입니다. 대부분의 학교에는, 특히 여중·여고에는 등나무 그늘이 있었습니다. 요즘처럼 교실에 에어컨이 없던 시절, 운동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다 잠시 앉아서 숨을 돌린 곳이고, 낮은 목소리로 친구들과 고민을 주고받은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
이금이의 ‘유진과 유진’은 아동 성폭력 문제를 다룬 성장소설입니다. 여중생 주인공들이 등나무 벤치 아래에서 얘기를 주고받는 장면이 여러번 나옵니다. 소설에 ‘등나무 줄기에도 등나무꽃의 울음이 돋아나고 있었다’는 대목이 나와 작가가 등나무를 두 여중생이 겪은 아픔을 치유하는 상징으로 염두에 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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