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에 가보니 보수 공사로 휴관 중이었습니다. 헛걸음했지만 그렇다고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미술관 입구에서 커다란 파초가 잘 자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과문해서인지 서울에서 파초가 자라는 것은 처음 본 것 같습니다. ^^
아시다시피 간송미술관은 1938년 간송 전형필(全鎣弼)이 건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사립미술관입니다.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제70호), 혜원 신윤복의 혜원전신첩(국보 제135호) 등 국보 12점, 보물 32점, 서울시 지정문화재 4점 등 수많은 중요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입니다. ^^
보수 공사 하는 것을 보고 발길을 돌리려는데 커다란 파초가 눈에 띄었습니다. 다른 식물에 둘러쌓여 있는, 옹색한 자리에 있긴 했지만 제대로 자란 파초였습니다. 서울에서도 파초가 잘 자라는 것을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파초는 옛부터 남부지방에서만 심어 가꾼 식물입니다. 영하 10~12도 정도까지밖에 견디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국내 자생종은 아니고 중국에서 도입한 식물이지만, 조선 후기 사대부들이 사랑해 남부지방 정원에 심어 가꾸었고 탈속을 상징하기도 해서 절에서 심기도 했습니다.
서울에서 파초를 월동시키려면 특별한 방법을 써야한다고 합니다. 가을에 밑둥을 잘라내고 뿌리 부분을 헌이불, 비닐 등으로 잘 감싸서 얼지 않게 관리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3월 중순 이후에 보온재를 벗겨내면 뿌리에서 새로운 줄기가 돋아나와 3미터 이상으로 크게 자란다고 합니다. ^^ 아마 간송미술관 파초도 이런 식으로 관리해서 잘 자라는 것 같습니다.
김동명의 시 ‘파초’에는 ‘조국을 언제 떠났노/파초의 꿈은 가련하다/ (중략) /너의 그 드리운 치맛자락으로/우리의 겨울을 가리우자’는 대목이 있죠. 파초는 바나나 비슷하게 생긴 식물입니다. 바나나와 속(屬)까지 같은 식물인데, 구분 방법을 이렇습니다. ^^
파초는 바나나에 비해 열매를 잘 맺지 못하고 열매가 열려도 크기가 5∼10cm로 작은 점, 바나나 잎 뒷면에서는 분 같은 흰가루가 묻어나지만 파초 잎은 그렇지 않은 점 등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꽃이 피면 포엽(꽃대의 밑에 있는 비늘 모양의 잎)의 색깔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파초의 포엽은 황색이지만 바나나의 포는 일반적으로 짙은 자주색입니다. ^^ 간단하게 우리나라 노지에서 보는 것은 거의 다 파초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ㅎ
바나나는 열대·아열대 지방에서 재배하는 식물로, 영상 5도 이하로 내려가면 피해를 입기 때문에 우리나라와 같이 서리가 내리는 온대지역에서는 노지 생육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식물원 온실에나 가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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