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쪼그리고 앉아 꽃 사진을 찍고 있는데, 팔소매 부분 느낌이 좀 이상했다. 힐끗 보니 쇠무릎 열매가 잔뜩 달라붙어 있었다. 쇠무릎을 슬쩍 스치기만 했는데도 팔소매에 열매들이 수십 개 붙어 있었다. 잘 떨어지지도 않는다.
요즈음 산행을 하거나 공터를 지나다보면 쇠무릎같은 열매가 옷에 달라붙는 경우가 많다. 쇠무릎은 비름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50~100㎝쯤 자란다. 가을에 줄기에 열매가 작은 벌레 모양으로 붙어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이나 동물이 있으면 재빨리 달라붙는다. 우리나라에는 전국적으로 분포하는데, 남쪽으로 갈수록 많다고 한다.
독특한 이름은 통통한 마디의 생김새가 소의 무릎과 같다고 붙인 이름이다. 한자 이름은 우슬(牛膝), 영어 이름도 ‘ox knee’로 같은 뜻이다. 쇠무릎 뿌리는 예전부터 무릎에 좋은 약으로 쓰였다는데, 한약명이 우슬이다.
쇠무릎 열매가 달라붙는 힘이 얼마나 센지는 섬에서 바다제비 등 새들이 이 식물에 날개가 엉키면서 떼죽음 당하는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이런 일이 발생하는 지역에서 쇠무릎 제거 작업을 벌이고 있다.
쇠무릎처럼 열매가 달라붙은 식물이 적지 않다. 가을에 바깥 활동을 하다 보면 도깨비바늘, 도꼬마리, 미국가막사리, 주름조개풀 등 열매도 옷에 달라붙는다. 이들 열매에는 화살촉이나 갈고리 모양의 부속물이 있어서 옷감 표면이나 동물의 털에 잘 달라붙는다. ‘찍찍이’로 불리는 ‘벨크로(접착포)’는 도꼬마리 열매가 동물에 잘 달라붙는 것을 보고 ‘생체모방’한 것이다.
열매가 사람이나 동물에 달라붙으면 힘 안 들이고 멀리 이동할 수 있고, 열매를 주변에 식물이 없는 공터 등에서 떼어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여러 모로 번식에 유리할 것이다.
식물은 동물에 달라붙는 전략 외에도 바람에 날리는 전략, 물로 이동시키는 전략, 세게 튕겨내는 전략 등으로 씨앗을 퍼트린다. 민들레, 박주가리 등은 씨앗에 털을 달아 바람을 타고 멀리 퍼져 나갈 수 있게 했다. 단풍나무 등은 프로펠러처럼 생긴 날개를 달아 씨앗이 부모로부터 최대한 멀리 떠나도록 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봉선화나 물봉선 등은 씨를 튕겨내는 식물이다. 이중 박주가리(박주가리의 상큼한 꽃향기, 아름다운 비상)와 물봉선(도도한 물봉선, 패션 감각도 남달라) 등은 전에 한번 소개한 적이 있다. 두뇌가 없는 식물들이 어떻게 이런 기발하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진화하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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