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도 노란 산수유 꽃이 터지기 시작했다. 이미 구례 산동면 산수유마을은 노랗게 물들었다는 소식이 올라오고 있다. 산수유 꽃이 필 무렵, 산에 가면 비슷하게 노란 꽃이 피는 나무가 있다. 바로 생강나무인데, 이 꽃을 볼 때마다 김유정의 단편 ‘동백꽃’이 떠오른다.
‘동백꽃’은 눈치 없는 남자 주인공이 점순이의 애정 표시를 알아차리지 못해 당하는 갖가지 곤욕을 해학적으로 그린 소설이다. 1930년대 강원도 산골 마을이 배경이다. 그런데 ‘동백꽃’을 읽다보면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바로 ‘노란 동백꽃’이 나오는 것이다.
<거지반 집에 다 내려와서 나는 호드기 소리를 듣고 발이 딱 멈추었다. 산기슭에 널려 있는 굵은 바윗돌 틈에 노란 동백꽃이 소보록하니 깔리었다. 그 틈에 끼어 앉아서 점순이가 청승맞게시리 호드기를 불고 있는 것이다. 그보다도 더 놀란 것은 고 앞에서 또 푸드득 푸드득 하고 들리는 닭의 횃소리다. 필연코 요년이 나의 약을 올리느라고 또 닭을 집어내다가 내가 내려올 길목에다 쌈을 시켜 놓고….>
<그리고 뭣에 떠다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첫번째는 남자 주인공이 산에서 나무를 해 내려오는데 점순이가 호드기(버들피리)를 불면서 닭쌈을 붙이는 것을 목격하는 장면이고, 두번째는 마지막 부분으로 점순이가 남자 주인공과 함께 동백꽃 속으로 쓰러지는 장면이다. 동백꽃은 대부분 붉은색이고 어쩌다 흰색이 있는 정도인데 왜 노란 동백꽃이라고 했을까.
답은 김유정이 말한 동백나무는 일반적인 상록수 ‘동백나무’가 아니라 생강나무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강원도 등 중부지방에서는 생강나무를 동백나무 또는 동박나무로 불렀다고 한다. 대중가요 ‘소양강 처녀’의 2절은 ‘동백꽃 피고 지는 계절이 오면 돌아와 주신다고 맹세하고 떠나셨죠’로 시작한다. 여기서 나오는 동백꽃도 생강나무 꽃을 가리키는 것이다. 상록수 동백나무가 자라지 않는 중부 이북 지방에서는 생강나무 열매로 기름을 짜서 동백기름 대신 머릿기름으로 사용했다. 이 때문에 생강나무를 동백나무로 부른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최근에야 알려졌다. 그래서 1990년대까지도 김유정의 소설집 표지를 붉은색 동백꽃으로 그린 출판사가 있었다. 김유정 고향마을에 조성해 놓은 김유정문학촌 전시관에도 표지에 붉은 동백꽃을 그려놓은 김유정 책이 두 권이나 있었다. ^^
생강나무는 잎을 비비거나 가지를 자르면 생강 냄새가 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생강이 아주 귀하던 시절에는 이 나뭇잎을 가루로 만들어 생강 대신 쓰기도 했다. 소설 ‘동백꽃’에 나오는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는 바로 생강 냄새를 가리키는 것이다. ^^
◇산수유·생강나무에 대해 더 읽을거리
-새봄 저 노란꽃 산수유일까 생강나무일까? [꽃맹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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