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이야기

황홀한 감각, 홍자색 박태기나무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

우면산 2021. 3. 30.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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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서 박태기나무꽃 홍자색 꽃봉오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 아래 사진은 지난 일요일 안양천 목동 부근에서 담은 것입니다. 어제 아침 출근하다보니 광화문에 있는 박태기나무도 꽃봉오리를 밀어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머지않아 꽃이 필 것 같습니다. ^^

 

 

아래 사진에서 보듯, 박태기나무 꽃봉오리는 꼭 염색한 밥알같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나무 이름이 박태기나무입니다. ^^ 박태기나무에 물이 오르고 꽃이 서서히 밀고 올라와 부풀어 오르는 모습은 정말 신기합니다. 물론 아무데서나 꽃이 피어나는 것은 아니고 겨우내 꽃눈을 달고 있다가 물이 오르면 점점 홍자색을 띠면서 부풀어 오르는 것입니다.

 

박태기나무꽃 봉오리. 밥알을 닮았다.

 

4월이면 서울 화단이나 공원에서 이 나무들이 온통 홍자색으로 물들 것입니다. 잎도 나지 않은 가지에 길이 1~2㎝ 정도 꽃이 다닥다닥 피기 때문에 나무 전체를 홍자색으로 염색한 것 같습니다.

 

 

이 화려한 꽃을 볼 때마다 박완서의 단편 친절한 복희씨가 떠오릅니다. 이 소설만큼 박태기나무꽃의 특징을 잘 잡아내 묘사한 소설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소설은 지금은 중풍으로 반신불수인 남편을 돌보는 할머니 이야기입니다. 할머니는 꽃다운 열아홉에 상경해 시장 가게에서 일하다 홀아비 주인아저씨에게 원치 않는 일을 당하고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 할머니에게는 결혼 전 가게에서 식모처럼 일할 때, 가게 군식구 중 한 명인 대학생이 자신의 거친 손등을 보고 글리세린을 발라줄 때 느낀 떨림의 기억이 있습니다.

 

<나는 내 몸이 한 그루의 박태기나무가 된 것 같았다. 봄날 느닷없이 딱딱한 가장귀에서 꽃자루도 없이 직접 진홍색 요요한 꽃을 뿜어내는 박태기나무, 헐벗은 우리 시골 마을에 있던 단 한 그루의 꽃나무였다. 내 얼굴은 이미 박태기꽃 빛깔이 되어 있을 거였다. 나는 내 몸에 그런 황홀한 감각이 숨어 있을 줄은 몰랐다. 이를 어쩌지. 그러나 박태기나무가 꽃피는 걸 누가 제어할 수 있단 말인가. 나의 떨림을 감지한 대학생은 당황한 듯 내 손을 뿌리쳤다.>

 

피기 시작하는 박태기나무꽃.

 

버스 차장을 목표로 상경한 순박한 시골 처녀가 처음 이성에 느낀 떨림을 박태기꽃에 비유해 어쩌면 이렇게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요. ^^ 작가가 봄이면 애정을 갖고 박태기나무가 꽃피는 것을 보았기에 '딱딱한 가장귀에서 꽃자루도 없이' 같은 표현이 나왔을 것입니다.

 

박태기나무는 중국 원산이지만,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입니다. 나무 이름은 꽃이 피기 직전 꽃망울 모양이 밥알을 닮은 데서 유래한 것입니다.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는 궁궐의 우리나무에서 “꽃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우리말 이름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중국 이름은 자형(紫荊)이니 그대로 번역해 '자주꽃나무'라고 했다면 더 어울리고 멋있었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만개한 박태기나무꽃.

 

북한에서는 ‘구슬꽃나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꽃의 모양을 보고 붙인 이름으로, 활짝 핀 꽃이 아니라 막 피어나려는 꽃봉오리가 구슬 같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박 교수는 “박태기나무와 구슬꽃나무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면 박태기나무보다 낭만적인 구슬꽃나무에 점을 찍고 싶다”고 했습니다. ^^

 

 

박태기나무는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나무 중 하나지만 친절한 복희씨’를 통해 문학적인 생명력까지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읽은 다음에 보는 박태기나무꽃은 더 이상 이전의 박태기나무꽃이 아니었다고 하면 오버일까요? ^^ 그래서 저는 자주꽃나무나 구슬꽃나무도 좋지만, 박태기나무도 충분히 예쁘고 꽃의 특성을 잘 담고 있는 이름인 데다 이제 문학적인 생명력까지 얻은 이름이라 유지했으면 좋겠다는 쪽입니다. ^^

 

◇박태기나무꽃 관련해 더 읽을거리

 

-꽃으로 박완서를 읽다(한길사) 

 

-능소화, 박완서 소설에서 가장 강렬한 꽃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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