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상징과도 같은 식물은 제목에 나오는 싱아겠지만, 이 소설에는 달개비(정식 이름은 닭의장풀)도 영롱한 남색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 그것도 싱아가 나오기 직전에 나옵니다. 먼저 그 한번 대목을 보겠습니다.
<뒷간 모퉁이에서 뒷동산으로 난 길엔 달개비가 쫙 깔려 있었다. 청아한 아침 이슬을 머금은 남빛 달개비꽃을 무참히 짓밟노라면 발은 저절로 씻겨지고 상쾌한 환희가 수액처럼 땅에서 몸으로 옮아오게 돼 있다. 충동적인 기쁨에 겨워 달개비잎으로 피리를 만들면 여리고도 떨리는 소리를 낸다.>
<서울 아이들이 알기나 할까, 쫙 깔린 달개비꽃의 남색이 얼마나 영롱하다는 걸. 그리고 달개비 이파리에는 얼마나 고운 소리가 숨어 있다는 것을. 달개비 이파리의 도톰하고 반질반질한 잎살을 손톱으로 조심스럽게 긁어내면 노방보다도 얇고 섬세한 잎맥만 남았다. 그 잎맥을 입술에서 떨게 하면 소리가 나는데, 나는 겨우 소리만 냈지만 구슬픈 곡조를 붙일 줄 아는 애도 있었다.>
달개비꽃 남색이 영롱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달개비 이파리에 고운 소리가 숨어 있다는 것은 몰랐습니다. ^^ 이 소설에 나온 대로,달개비 잎살을 손톱으로 긁어내고 잎맥만 남긴 상태에서 한번 불어봐야겠습니다.
달개비 꽃은 아직 피지 않았습니다. 빠르면 이달 중순이나 말부터 피기 시작해 늦가을인 10월까지 필 것입니다. 담장 밑이나 공터 등 그늘지고 다소 습기가 있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서나 만날 수 있습니다.
꽃은 작지만 자세히 보면 상당히 예쁘고 개성 가득합니다. ^^ 우선 꽃은 포에 싸여 있는데, 포가 보트 모양으로 독특합니다. 남색 꽃잎 2장이 부챗살처럼 펴져 있고 그 아래 꽃술이 있는 구조입니다. 자세히 보면 아래쪽에 꽃잎이 한 장 더 있지만 작고 반투명이어서 눈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달개비는 꽃이 닭의 볏을 닮았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랍니다. 이 풀의 정식 이름은 닭의장풀인데, 이 식물이 주로 닭장 주변에 자란다고 붙은 이름입니다. 국가식물표준목록은 닭의장풀을 추천명으로, 달개비는 이명(異名)으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달개비의 정식 이름을 닭의장풀로 한데 대해 문재인 대통령도 유감을 표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2012년 대선 때 한국기자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달개비를 화제에 올리며 "신비롭고 예쁜 꽃 달개비를 요즘 식물학자들이 '닭의장풀'이라 부르는데, 달개비라는 이름이 얼마나 예쁘냐"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서울 광화문에 있는 음식점 '달개비'가) 달개비란 이름을 써서 참 고맙다"고 했습니다. 저도 달개비라는 이름에 더 정이 갑니다. ^^
달개비라는 이름은 화단에 흔한 자주달개비, 수생식물인 물달개비 등에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은 달개비와 닭의장풀 중 어느 이름이 더 낫다고 생각하시는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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