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백석이 사랑한 나무를 고르라면 당연히 갈매나무일 것입니다. 백석이 1948년 남한 문단에 마지막으로 발표한 시, ‘남(南)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의 마지막 부분엔 갈매나무가 나옵니다. 이 시의 마지막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이 시는 백석이 해방 직후 만주를 헤매다 신의주에 도착했을 즈음 쓴 시인데, 절망적인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외롭게 눈을 맞고 서 있는 갈매나무로 표현했습니다. 며칠 전 별세한 신경림 시인은 책 ‘시인을 찾아서’에서 “이 갈매나무야말로 백석의 모든 시에 관통하는 이미지”라고 극찬했습니다. ^^
갈매나무가 얼마나 대단한 나무이기에 백석이 드물다, 굳다, 정하다 등 형용사를 세 개나 붙였을까요?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
어제 점심때 서울 경복궁 고궁박물관 정원을 산책하다 갈매나무라는 푯말을 보았습니다. 눈을 들어보니 높이 3미터 안팎인 갈매나무가 보였습니다. 서울 시내 중심인 광화문에 갈매나무가 있는줄은 몰랐습니다. ^^
아마 백석 시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갈매나무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자 갈매나무를 구해 심은 것 같습니다. 꽤 오래 전에 심었는지 나무는 이미 안정적으로 잘 자리잡은 것 같았습니다. 어떻든 이제 갈매나무가 궁금한 분들은 고궁박물관 정원에 가서 갈매나무를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갈매나무는 높이 5m까지 자란다는, 그리 크지 않은 나무입니다. 암수가 다른 나무인데, 5~6월 작은 황록색 꽃이 피고 가을에 콩알만 한 검은 열매가 열립니다. 또 작은 가지 끝이 뾰족한 가시로 변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갈매나무가 흔히 볼 수 있는 나무가 아니어서 드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굳고 정한 나무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 나무가 구부러져 있는 경우가 많고 가지도 제멋대로 뻗어 그저 그런 나무 중 하나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갈매나무에 관심을 가졌다가 실제로 갈매나무를 보고 실망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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