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중 양평을 지나는 길에 황순원문학관 소나기마을에 들러 보았습니다. 그런데 좀 화가 났습니다. 소나기마을 어디서도 마타리 꽃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ㅠㅠ
제가 여러 번 소개했다시피 황순원의 ‘소나기’에는 마타리 꽃이 나옵니다. 어느 대목에 나오냐면 소년과 소녀가 산 너머로 놀러 간 날, 소년이 소녀에게 꺾어준 여러 가지 꽃 중에서 '양산같이 생긴 노란 꽃'이 바로 마타리입니다. 소설에서 소녀는 ‘약간 상기된 얼굴에 살포시 보조개를 떠올리며’ ‘마타리꽃을 양산받듯이 해’ 보입니다.
마타리는 마타리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서식환경이 까다롭지 않아 전국의 산과 들에서 볼 수 있습니다. 여름에 피기 시작해 가을을 알리는 대표적인 꽃이기도 합니다. 요즘 여기저기서 황금색 물결로 흔들리는 꽃들을 볼 수 있는데, 소나기마을에도 있기만 하면 당연히 필 시기입니다.
초기엔 황순원문학관 바로 앞 언덕에 마타리꽃을 가득 심어 놓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 가보니 싹 없애버렸더군요. 이유를 물어보니 “냄새가 나서···”라고 하더군요. ㅠㅠ
마타리꽃이 피면 좀 좋지 않은 냄새가 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황순원문학관 ‘마타리꽃 사랑방’ 입구에는 문학관 주변에서 나는 특이한 냄새의 정체를 알려주는 작은 안내문이 있었습니다. 문학관 진입로 언덕에 7~11월 마타리꽃이 피는데, 그 즈음이면 마타리 뿌리에서 특이한 냄새가 나니 오해하지 말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마타리 꽃 냄새는 아주 더운 날씨만 아니면 나름 신선한 느낌이 드는, 견딜만한 냄새입니다. 하지만 하루 종일 그곳에서 일하거나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그 냄새에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많이 심지는 않더라도, 그 넓은 1만4000평 야외 광장 중 어디라도 적당한 곳에 마타리꽃을 몇 그루라도 심어놓고 안내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소나기마을은 아예 마타리꽃을 한 그루도 남기지 않고 없애버렸습니다.
또 올해 문학관 내부를 개조하면서 ‘마타리꽃 사랑방’이라는 명칭까지 없앴더군요. 이름이 ‘공부 안해도 되는 문학교실’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이젠 소나기마을 어디에도 마타리 꽃 흔적 자체가 없는 것 같습니다. ㅠㅠ
냄새 때문에 마타리꽃을 없애더라도 성의 있게 문학관을 운영하려면 소설 ‘소나기’에 나오는 꽃들을 하나라도 더 심고 알리려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소나기’에는 마타리 외에도 갈꽃(갈대꽃), 메밀꽃, 칡덩굴, 등꽃, 억새풀, 떡갈나무, 호두나무 등 다양한 꽃과 나무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타리꽃이 사라진 자리에는 큰금계국, 노랑코스모스, 기생초 같은 원예종 꽃들만 가득했습니다. 곳곳에 잡초가 무성해 관리를 거의 포기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문학관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좀 성의 있게 일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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