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덕수궁에서는 <덕수궁 프로젝트 2021: 상상의 정원>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정원’을 매개로 덕수궁 역사와 의미를 돌아보는 전시회입니다. 제 관심을 끈 것은 이 전시회에 참여한 신혜우 작가가 만든 ‘덕수궁 식물지도’였습니다. ^^
마침 신혜우 작가의 책 ‘식물학자의 노트’를 읽은 중이라 더욱 관심이 갔습니다. 작가는 그림 그리는 식물학자입니다. 이 전시를 위해 2021년 봄부터 덕수궁에서 식물들을 채집하고 조사하고 관찰·기록했다고 합니다. 지도는 원하는 관람객들에게 무료로 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 덕수궁식물지도에 나오는 식물 중 재미있는 사연이 있는 세 가지 나무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 먼저 석조전과 국립현대미술관 사이 마당에 있는 가시칠엽수입니다. 1912년 환갑을 맞은 고종에게 주한 네덜란드 공사가 선물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덕수궁 가시칠엽수는 최소 110살이 넘은 나무인 셈이죠.
칠엽수(七葉樹)는 잎이 7장씩 모여 달려 붙은 이름입니다. 칠엽수는 열매 표면이 매끈한데 가시칠엽수는 철퇴 모양으로 가시가 잔뜩 나 있습니다. 가시칠엽수는 흔히 ‘서양칠엽수’ 또는 ‘마로니에’라고도 합니다.
두번째는 석어당 앞 살구나무입니다. 봄에 이 살구나무 꽃이 만개하면 정말 장관입니다. ^^ 석어당 등 주변의 기와 등과 어우러져 기품 있는 아름다움을 자아냅니다. 만개해서 지는 기간이 잠깐이니 시간을 잘 맞추어야합니다. ^^ 대개 3월말 전후에 만개합니다.
석어당은 덕수궁에서 유일하고, 궁궐 전각으로는 보기 드문 2층 목조 건축물입니다. 석어당(昔御堂)은 ‘옛 임금이 머물던 집’이라는 뜻으로, 옛 임금은 선조입니다. 선조는 임진왜란 때 의주로 피신했다가 돌아왔지만 불에 탄 경복궁과 창덕궁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정릉동행궁, 지금의 덕수궁에 들어가 1608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덕수궁 석어당 등에서 기거했습니다.
석어당에는 또 하나의 사연이 있습니다. 선조 뒤를 이은 광해군은 선조의 계비인 인목대비를 석어당에 유폐했고, 인목대비는 인조반정이 일어날 때까지 10여 년 석어당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고 합니다.
세번째는 국립현대미술관 바로 옆에 있는 오얏나무입니다. 식물지도에는 국가표준식물목록 추천명대로 자두나무라고 표기했습니다. 자두나무 꽃은 한자로 이화(李花)입니다(배꽃은 이화·梨花). 오얏나무는 좀 익숙지 않은 나무인데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고치지 말아라”는 옛말에 나오는 바로 그 나무입니다. 자두나무의 순우리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얏은 이성계가 세운 조선왕조를 상징하기도 했는데,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황실을 상징하는 무늬로 오얏꽃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이 오얏 문양이 황실 용품 등에 두루 쓰였고, 덕수궁 석조전의 삼각형 박공지붕 등 건축물에도 오얏꽃 무늬가 남아 있습니다.
미술관 앞 오얏나무는 석조전에 있는 오얏꽃 무늬를 설명하면 어떤 나무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10년 전쯤 심은 것이라고 합니다. 덕수궁에 가면 이 나무도 한번 눈여겨볼만 합니다. 봄이면 새하얀 꽃이 핀 것이 제법 볼만합니다. ^^
◇더 읽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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