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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34

신간 꽃으로 '토지'를 읽다(한길사)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를 읽고 나면 누구라도 몇 가지 기억에 남는 꽃들이 있을 것이다. 꼼꼼히 읽지 않더라도, 별당아씨가 나올 때마다 반복적으로 진달래꽃, 최참판댁이 배경일 때 능소화가 자주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더 확장해 아예 꽃의 관점에서 ‘토지’를 읽고 꽃들을 등장인물들과 연결한 책이 나왔다. 바로 아래 ‘꽃으로 토지를 읽다’(한길사)다. ^^ 책의 첫 장은 ‘토지’의 원픽 ‘서희의 꽃’이다. 제목 ‘서희와 길상이의 개나리 연정’ ‘서희, 가시 가득한 탱자나무 같은 여인’ ‘서희, 해당화 가지 휘어잡고 주저앉다’만 봐도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서희의 어린 시절의 꽃으로 개나리, 중년의 도도한 서희의 상징으로 탱자나무, ‘토지’ 마지막 장면에서 해방의 감격에 해당화 가지를 잡고 주저앉는..

책이야기 2023.05.19

“사랑 손님이 보냈다” 어머니가 얼굴 붉힌 꽃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는 1935년 주요섭이 ‘조광(朝光)’지에 발표한 단편 소설이다. 일찍 남편을 잃은 스물넷 어머니가 사랑손님을 마음에 두면서도 결국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을 여섯 살 딸 옥희 시각으로 전하는 소설이다. 어머니가 사랑손님이 자신에게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결정적인 계기는 옥희가 전해준 꽃이었다. 옥희는 어머니를 기쁘게 하려고 유치원에서 가져온 꽃을 엉겁결에 아저씨가 갖다 주라고 했다고 말해버린다. 그때 어머니 얼굴이 빨갛게 물들고 손가락은 파르르 떨린다. 꽃을 받은 어머니는 옥희에게 ‘이 꽃 얘기 아무보구두 하지 말아라’고 당부했다. 어머니는 옥희 예상과는 달리 그 꽃을 버리지 않고 꽃병에 꽂아서 풍금 위에 놓아두었다. 그리고 며칠 후 꽃이 시들자 꽃을 잘라 찬송가책 갈피에 끼워 두었..

책이야기 2022.12.26

100년 남산도서관이 선택한 ‘꽃으로 박완서를 읽다’

서울 남산도서관은 지난 10월 설립 100주년을 맞은 도서관입니다. 1922년 10월 5일 명동에 처음 문을 열었는데, 당시 이름은 경성부립도서관이었다고 합니다. 이 도서관은 분기마다 「끌리는架 한국문학展」이라는 기획전을 하는데, 이번 분기에 선택한 주제(책)는 ‘꽃으로 박완서를 읽다’였습니다. ^^ '끌리는架 한국문학展'은 한국문학 관련 주제를 분기별로 기획전시하는 방식입니다. ‘근대문학에서 현대문학까지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기위해 기획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번이 4회째인데, 지난 2월 문학 작품에서 서울 이야기를 엿보는 ‘서울, 이야기를 만들다’를 시작으로 5월 ‘한국문학과 나무이야기’, 8월 ‘시’에 이어 11월부터 ‘꽃으로 박완서를 읽다’를 주제로 전시하고 있습니다. ^^ 「끌리는架 한국문..

책이야기 2022.12.11

석류꽃빛 다홍치마 입고싶은 ‘토지’ 봉순네

다음은 소설 ‘토지’에서 봉순네가 김서방댁과 나누는 대화 내용입니다. 봉순네는 봉순의 어머니로, 젊은 시절 남편을 잃고 최참판댁 침모로 살고 있습니다. 서희에게는 자신을 버리고 떠난 별당아씨 대신 어머니 같은 존재입니다. 귀녀가 최참판댁 당주 최치수 살인에 관여했음을 가장 먼저 눈치챌 정도로 사려 깊은 여성이기도 합니다. 봉순네가 김서방댁과 나오는 대화에 요즘 피기 시작한 석류꽃이 나옵니다. ^^ 석류꽃이 떨어졌으니 이맘때이거나 조금 더 지난 때인 것 같습니다. 봉순네는 시들지도 않고 떨어진 석류꽃을 줍고 있습니다. 벌써 바구니에 수북한 모양입니다. 그걸 보고 김서방댁은 나이 들어 소꿉놀이하려고 그러느냐고 놀리고, 봉순네는 애기씨(서희) 주려고 한다고 답합니다. ^^ 그러면서 석류빛 다홍치마가 있다면 입..

책이야기 2022.06.08

백석이 사랑한 꽃, 수선화(김연수 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을 읽고)

시인 백석(1912~1996)이 사랑한 나무를 고르라면 당연히 갈매나무일 것입니다. 백석이 1948년 남한 문단에 마지막으로 발표한 시, ‘남(南)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의 마지막 부분엔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가 나옵니다. 이 시는 백석이 해방 직후 만주를 헤매다 신의주에 도착했을 즈음 쓴 시인데, 절망적인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외롭게 눈을 맞고 서 있는 갈매나무로 표현했습니다. 신경림 시인은 책 ‘시인을 찾아서’에서 “이 갈매나무야말로 백석의 모든 시에 관통하는 이미지”라고 극찬했습니다. ^^ 그렇다면 백석이 사랑한 꽃을 고르라면 어떤 꽃일까요? 그 단초를 김연수 장편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을 읽다가 발견했습니다. 이 소설은 백석이 북한에서 번역 작업에 몰두하다 1956년 다시 시를 쓰..

책이야기 2022.02.15

‘신사와 아가씨’에 자주 나오는 책이 있다는데…

요즘 KBS 2TV 주말드라마 ‘신사와 아가씨’(극본 김사경, 연출 신창석) 인기가 대단하죠. 시청률 30%를 넘고 있고 지난 32회(1월9일 방송)는 36%를 찍기도 했습니다. 이영국(지현우 분)과 박단단(이세희 분)의 달달한 사랑 이야기가 기본 줄거리입니다. ^^ 그런데 이 드라마를 보다 보면 자주 나오는 책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 30회 지현우가 자기 방에서 박 선생을 떠올리는 장면에서 책상에 민트색 책이 보였습니다. 지현우가 이 책을 읽는 장면도 있었습니다. 어떤 책이기에 이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걸까요? 이 책은 ‘꽃의 박완서를 읽다’(한길사)입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박완서 소설을 꽃을 중심으로 읽어본 책입니다. ^^ 박완서 소설 중에서 꽃이 상징 또는 주요 소재로 나온 소설을 골라 ..

책이야기 2022.02.03

벌써 11주기 박완서, 어떤 책부터 읽을까?

22일은 박완서 작가의 별세 11주기입니다. 작가는 2011년1월 22일 담낭암으로 별세했습니다. 작가는 1970년 ‘나목’으로 데뷔한 이후 40년간 15편의 장편과 10여 권의 소설집을 냈고 산문집도 적지 않게 출간했습니다. 박완서에 관심이 있더라도 어떤 책부터 읽어야 할지 고르기가 쉽지 않겠지요. 이 글은 그런 분들을 위한 것입니다. ^^ 우선 소설은 장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장편 ‘그 남자네 집’,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 등 3권을 골랐습니다. 먼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박완서 문학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이니 제일 먼저 읽는 것이 좋겠습니다. ^^ 이 소설은 작가가 코흘리개 시절부터 스무 살 대학생으로 6·25를 겪기까지 과정을 담은 소설입니다. 작가가 “순전히..

책이야기 2022.01.21

‘식물학자의 노트’, 식물 전공한 세밀화가가 쓴 책은 뭐가 다를까?

‘식물학자의 노트’를 쓴 신혜우 작가는 경력이 특이하다. 다른 식물 세밀화가들은 그림에서 출발해 식물 일러스트로 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작가는 식물학에서 출발해 식물 일러스트를 겸하고 있다. 대학에서 생물학을 공부하고 식물분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래서인지 식물에 대한 지식이 깊고 탄탄해 이 책을 읽고 새로 또는 자세히 안 것들이 적지 않다. ^^ 먼저 우리가 흔히 보는 은행나무, 소철, 메타세쿼이아는 야생에서는 거의 멸종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에게 은행나무는 너무 흔한 나무지만 “야생 은행나무는 중국 저장성 등 일부 지역에 서식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개체 수가 200 그루가 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자연보전연맹은 은행나무를 적색목록에 멸종위기 종으로 올렸다. 흔히 화분에..

책이야기 2021.10.29

‘두근두근 내인생’ 아름이가 도라지꽃을 바탕화면에 깐 이유는?

도라지 꽃이 막 피기 시작했다. 아래 동영상처럼, 하나는 막 벌어지기 시작하고 다른 하나는 아직 꽃잎을 다물고 있는 도라지 꽃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이 글을 쓴다. ^^ 막 피기 시작한 도라지꽃. 도라지는 초롱꽃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우리나라 전국의 산에서 볼 수 있으며, 일본과 중국에도 분포하는 식물이다. 도라지 꽃은 6∼8월 보라색 또는 흰색으로 피는데, 흰색과 보라색 사이에 중간색 같은 교잡이 없다는 것도 특이하다. 별처럼 다섯 갈래로 갈라진 통꽃이 기품이 있으면서도 아름답다. 우리가 흔히 보는 도라지 꽃은 밭에 재배하는 것으로, 나물로 먹는 것은 도라지 뿌리다. 김애란의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을 읽다가 도라지꽃을 발견했다. 이 소설은 남들보다 빨리 늙는 조로증(早老症)에 걸린 열일곱..

책이야기 2021.06.25

‘꽃의 작가’ 박완서, 엄마의 꽃은 무엇을 골랐을까?

박완서 작가를 수식하는 말은 많지만 저는 ‘꽃의 작가’를 추가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 우선 그의 소설에는 싱아·능소화·박태기나무꽃 등 많은 꽃들이 등장하는 데다 꽃에 대한 묘사, 특히 꽃을 주인공 성격이나 감정에 이입하는 방식이 탁월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소설이 ‘친절한 복희씨’입니다. 이 소설만큼 박태기나무 꽃의 특징을 잘 잡아내 묘사한 소설을 보지 못했습니다. 주인공 할머니는 결혼 전 가게에서 식모처럼 일할 때, 가게 군식구 중 한 명인 대학생이 자신의 거친 손등을 보고 글리세린을 발라줄 때 느낀 떨림의 기억이 있습니다. 버스 차장을 목표로 상경한 순박한 시골 처녀가 처음 느낀 떨림을 박태기꽃에 비유해 어쩌면 이렇게 생생하게 그릴 수 있을까요. 작가의 이 표현으로, 박태기나무..

책이야기 2021.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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